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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프티카, F1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차

약 13분

2025년 6월 개봉한 〈F1 the Movie〉가 전 세계 흥행 수익 6억 3천만 달러를 넘겼다(역대 최고 흥행 스포츠 영화, 브래드 피트 주연작 기준 최고 흥행권). 그런데 영화관을 나오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F1의 진짜 이야기들은, 시나리오 작가들이 감히 쓸 수 없을 정도로 더 영화 같다고.

그 드라마의 한가운데에는 의외의 물건이 하나 있다. 세이프티카 — 사고가 나면 차들을 천천히 줄 세우는, 안전을 위해 만든 차다. 그런데 F1에서는 이 차가 결과를 가장 빠르게 뒤집는 장치가 된다. 세이프티카 한 대가 뒤집은 세 개의 실화, 그리고 그것을 픽션으로 옮긴 한 편의 영화를 본다.

1. 〈F1〉 — 가장 비싼 축에 드는 스포츠 영화

감독은 Joseph Kosinski. 〈Top Gun: Maverick〉으로 15억 달러를 벌어낸 직후의 작품이다. 사실 그는 한참 전, 그러니까 〈Ford v Ferrari〉가 만들어지기 전에 그 프로젝트를 맡으려 했다. 당시 캐스팅은 Tom Cruise와 Brad Pitt. 두 사람이 함께 대본 리딩까지 했다고 한다. 예산 문제로 코신스키가 빠지면서 결국 Matt Damon-Christian Bale 조합으로 가게 됐고, 코신스키는 크루즈와 톱건 매버릭으로 갔다. 〈F1〉은 그때 못다 한 약속을 15년 만에 지킨 셈이다.

이 영화의 진짜 특이점은 만드는 방식에 있다. 가상의 11번째 팀 APXGP가 2023, 2024 시즌 여러 GP 주말에 실제 패독에 차고를 차렸다. F2 차량 6대를 메르세데스와 함께 F1처럼 보이도록 개조했고, 차체 곳곳에 카메라 마운트를 직접 박아 넣었다. 코신스키는 메르세데스 시뮬레이터 촬영 허가를 받으려고 Toto Wolff를 1년 가까이 설득했다. 메르세데스 직원조차 거의 들어가지 못하는 공간이었고, 그는 이 보안 수준을 톱건 매버릭 때 (미 해군이 카메라를 압수해 사진을 지워버린) 경험에 빗댔다.

공동 프로듀서 중 한 명이 Lewis Hamilton이다. 7번 챔피언이 직접 자문하고 제작에 참여했다. 이 사실은 잠시 기억해두자. 뒤에서 다시 등장한다.

줄거리는 익숙하다. 은퇴한 노장 드라이버 Sonny Hayes(피트)가 망해가는 팀에 복귀해 신예 후배 Joshua Pearce(Damson Idris)와 함께 싸운다. 진짜 F1 팬이 보면 “말이 안 된다”는 평이 다수다. 그런데 6억 3천만 달러를 벌었다. 이 모순이 F1이라는 스포츠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 F1은 사실관계보다 드라마로 승부 보는 곳이다.

흥미로운 건 영화의 클라이맥스 장치들이다. 늦은 세이프티카, 1랩 안에 모든 게 뒤집히는 마지막 순간. 코신스키가 그런 장치들을 어디서 가져왔는지 알려면 진짜 F1의 세 사건을 봐야 한다.

2. 캐나다 2008 — 빨간불 하나가 우승 후보 둘을 지운 날

크래시게이트가 터지기 석 달 전, 같은 2008년 6월. 몬트리올의 Circuit Gilles Villeneuve.

레이스 도중 세이프티카가 나왔고, 상위권이 한꺼번에 피트로 몰려들었다. 여기 작은 장치가 하나 있다 — 피트레인 출구 신호등. 세이프티카가 이끄는 메인 팩이 피트 출구 앞을 지나는 동안에는 그 출구가 빨간불이 된다. 잠깐 세워두라는 뜻이다.

그날 Kimi Räikkönen과 Robert Kubica는 그 빨간불 앞에 나란히 멈췄다. 그런데 당시 챔피언십 선두였던 Lewis Hamilton은 불을 너무 늦게 봤다. 피트레인을 그대로 달려 내려가 Räikkönen의 페라리 뒤를 들이받았고, 둘 다 그 자리에서 리타이어했다. 뒤따르던 Nico Rosberg까지 Hamilton의 맥라렌을 받았다(로즈버그는 프런트윙만 갈고 복귀). Hamilton과 Rosberg는 다음 프랑스 GP에서 그리드 10위 페널티를 받았다.

겉으로 보면 이건 그냥 “Hamilton이 앞을 못 보고 박은” 사고다. 하지만 맥락을 보면 훨씬 F1답다. 세이프티카가 나왔고, 상위권이 동시에 피트에 들어왔고, 피트 출구 신호가 닫혔고, 찰나의 인지 실패가 우승 후보 둘을 동시에 지웠다.

혼란의 최대 수혜자는 따로 있었다. Robert Kubica가 그 레이스를 이겨, Nick Heidfeld와 함께 BMW Sauber 1-2 피니시를 완성했다. 그것은 Kubica의 — 그리고 BMW Sauber라는 팀의 — 처음이자 마지막 F1 우승이었다.

F1에서는 트랙 위 속도보다 시스템을 읽는 속도가 더 중요할 때가 있다. 피트 출구의 빨간불은 사소한 디테일처럼 보이지만, 그날 그 디테일이 레이스의 축을 통째로 바꿨다.

3. 크래시게이트 (2008 싱가포르) — 시나리오가 실재했던 그날

2008년 9월 28일, 마리나베이. F1 사상 첫 번째 야간 레이스였다. 새로 깔린 시가지 코스, 화려한 조명, 야자수, 호텔. 무대 자체가 영화 세트 같았다.

그날의 주인공은 Renault의 두 드라이버였다. Fernando Alonso는 2년 연속 챔피언 경력의 슈퍼스타. 팀메이트 Nelson Piquet Jr.는 전설적인 챔피언 넬슨 피케의 아들이지만, 본인은 F1 2년차였다.

Alonso는 예선 15위였다. 마리나베이는 추월이 거의 불가능한 시가지 코스다. 정상 레이스 흐름에선 입상도 어려웠다.

레이스 12랩에 Alonso가 피트인했다. 연료가 아주 적게 들어가 있어 가벼운 차였다. 그리고 두 랩 뒤인 14랩, Piquet Jr.가 17번 코너에서 단독 사고를 냈다. 하필 그 위치는 크레인이 닿지 않아 차를 빠르게 치울 수 없는 곳이었다. 세이프티카 출동이 불가피했다.

세이프티카가 나오자 다른 차들이 피트인했다. 이미 두 랩 전에 들어왔다 나온 Alonso는 조기 피트인의 손실을 상당 부분 되돌려받았다. WMSC 기록상 그는 12랩 피트스톱 후 꼴찌로 복귀했지만, 다른 차들의 피트와 페널티가 정리되면서 5위까지 올라왔다. 앞에 있던 차들까지 전략상 다시 묶이자, Alonso에게는 정상 레이스라면 없었을 우승 경로가 열렸다. 그가 그해 유일한 우승을 가져갔다.

이 모든 게 “운”으로 보였다. Renault는 “Alonso가 전술적 천재였고 세이프티카는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Piquet는 “단순한 실수”라고 진술했다. 경기 직후부터 의심과 루머는 있었지만, 공식 조사로 진실이 드러나기까지는 거의 1년이 걸렸다.

2009년 헝가리 GP 후, Renault가 Piquet Jr.를 해고했다. Piquet는 조용히 사라지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를 통해 막스 모슬리 FIA 회장에게 직접 연락이 갔고, 파리에서 진술이 이루어졌다 — Briatore(팀 디렉터)와 Symonds(엔지니어링 디렉터)가 특정 랩, 특정 코너에서 의도적으로 사고를 내라고 지시했다고. 차의 컨트롤을 일부러 놓아버렸다고.

Renault는 혐의에 대응하지 않았다. Briatore와 Symonds가 즉시 팀을 떠났다. FIA는 Briatore를 모든 FIA 관련 활동에서 무기한 추방했고 (후에 법원에서 감형), Symonds에게 5년 정지를 내렸다. 팀에는 2년 자격정지 유예 처분. Piquet Jr.는 증언과 맞바꿔 면책. Alonso는 무관함이 확인됐다.

여기서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 F1 역사상 최초로 드라이버의 안전 자체가 도구로 사용된 사례라는 점. 고속으로 벽에 들이받는 일을 팀이 지시했다. 둘째, 이 사건은 1년 동안 완벽한 픽션으로 작동했다. 모두가 박수쳤다. 픽션이 실재로 통할 수 있다는 걸 F1이 증명한 셈이다.

후일담이 흥미롭다. Piquet Jr.는 F1에서 쫓겨난 뒤 Formula E 초대 챔피언이 됐다. 그리고 더 흥미로운 건 — Felipe Massa가 2008년 챔피언십에서 Hamilton에게 1점 차로 졌는데, “크래시게이트가 없었다면 내가 챔피언이었다”며 법정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 11월 런던 고등법원은 그의 청구 중 일부가 본안 재판까지 갈 수 있다고 판단했다. 17년이 지났는데도, 그날의 1랩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4. 아부다비 2021 — 시나리오 없이도 시나리오 같았을 때

2021년 12월 12일. 시즌 마지막 GP. Hamilton 대 Verstappen, 점수 369.5 동점. 누가 앞서 끝내든 그 사람이 챔피언이었다. 그해 내내 두 사람은 실버스톤에서 박았고, 몬자에서도 박았고, 사우디와 브라질에서 페널티 논쟁을 벌였다.

레이스가 시작되자 Hamilton이 1랩에서 리드를 잡고 거의 끝까지 컨트롤했다. 8번째 챔피언십이 눈앞이었다. 슈마허의 7회를 넘어 단독 1위가 되는 순간이었다.

53랩 (총 58랩 중). Nicholas Latifi가 14번 코너에서 사고를 냈다. 크레인이 필요한 위치였다 — 크래시게이트 때처럼. 세이프티카 출동.

여기서 두 팀의 전략이 갈렸다. Mercedes는 Hamilton을 그대로 두기로 했다. 리드가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피트인하면 트랙 포지션을 잃을 위험이 컸다. 게다가 레이스가 세이프티카 상태로 끝날 가능성도 있었다. Red Bull은 도박을 걸었다 — Verstappen을 피트인시켜 새 소프트 타이어로 갈았다. 피트인 손실로 Hamilton과 그 사이에 다섯 대의 랩다운 차량(lapped car)이 끼었다. 정상 세이프티카 절차였다면, 그 랩다운 차량들이 언랩(unlap)을 하고 추가로 한 랩을 더 도는 동안 Verstappen은 Hamilton에게 접근조차 못한 채 체커기를 받아야 했다.

57랩, 마지막 랩 직전. 레이스 디렉터 Michael Masi가 결정을 내렸다. 두 가지 규정 일탈이 있었다.

첫째, 랩다운 차량들 중 Hamilton과 Verstappen 사이의 5대만 언랩을 시켰다. 규정은 “모든 랩다운 차량” 또는 “아무도 언랩 안 함” 둘 중 하나여야 한다 (FIA가 후에 인정한 부분이다).

둘째, 언랩 후 세이프티카가 한 랩을 더 돌아야 한다는 조항(스포팅 레귤레이션 48.12)이 있었지만, Masi는 세이프티카를 바로 들여보냈다.

결과는 영화 같았다. 마지막 1랩 그린 플래그, 새 타이어 Verstappen이 5번 코너에서 Hamilton 안쪽으로 들어왔다. 추월 성공. 챔피언.

▶ 그 마지막 한 랩: Verstappen Wins Title With Final Lap Overtake! — Formula 1 공식 영상

Mercedes가 즉각 항의했다. 스튜어드는 “레이스 디렉터에게 우선 권한(overriding authority)이 있다”며 결과를 유지했다. 2022년 3월 FIA 보고서는 Masi가 규정을 어겼음을 공식 인정했지만 (“human error”) — 결과는 유효(valid), 변경 불가. Masi는 레이스 디렉터직에서 교체됐다(FIA 내 다른 직책이 제안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의 진짜 묘함은 모두가 다른 진실을 본다는 점이다. Mercedes 측에선 8번째 챔피언십 타이틀을 부당하게 빼앗겼다고 본다. Red Bull의 Christian Horner는 “세이프티카 뒤에서 경기를 끝내는 건 그랑프리를 마무리하는 좋은 방법이 아니다”라며 그린 플래그 피니시를 옹호한다. Verstappen 본인은 Masi를 변호한다 — “Michael은 부당하게 버스 밑으로 던져졌다”고. 흥미롭게도 Masi의 후임으로 레이스 디렉터가 됐던 Niels Wittich도 Masi를 옹호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희생양이었고, 그렇게 많이 잘못하지 않았다”고.

Hamilton은 그 후로 챔피언십을 한 번도 따내지 못했다. 두 달 넘게 침묵하던 그는 2022년 메르세데스 차량 발표회에서 입을 열었다 — “분명 어느 순간 나는 시스템에 대한 믿음을 조금 잃었다”. 그리고 2025년, 그는 페라리로 이적했다. 12년의 메르세데스 시대가 끝났다.

후일담 두 개를 덧붙인다. 그날의 세이프티카(Aston Martin Vantage SC02)가 60만 파운드에 매물로 나왔다 — 2021–2023 동안 20개 GP에 출동했던 차다. 그리고 — 처음에 말한 영화 〈F1〉의 공동 프로듀서가 Lewis Hamilton이라는 사실. Sonny Hayes의 재기(redemption) 서사가, 사실은 Hamilton 자신의 미완의 답안일지도 모른다는 가설이 가능해진다. 자기가 아부다비에서 잃은 마지막 1랩의 카타르시스를, 자기가 직접 만든 픽션 안에서 다시 쓰는 셈이다.

세이프티카가 만든 풍경

세 이야기를 다시 본다.

캐나다 2008은 세이프티카가 부른 사소한 빨간불 하나가 우승 후보 둘을 지웠다 — 우연과 부주의. 크래시게이트는 세이프티카를 부르려고 사고를 만들어냈다 — 음모. 아부다비 2021은 세이프티카를 거두는 절차의 해석이 챔피언을 갈랐다 — 규정과 판단. 그리고 영화는 이 모든 것, 늦은 세이프티카와 한 랩 안에 뒤집히는 결말을 픽션으로 압축했다.

네 장면 모두 세이프티카가 중심 장치다. 본래 안전을 위해 만들어진 장치가, F1에선 가장 큰 드라마를 만드는 기계가 됐다. 차를 천천히 달리게 만드는 차가, 결과를 가장 빠르게 뒤집는 차다.

F1은 본질적으로 천분의 1초(0.001초)를 다투는 스포츠다. 폴 포지션이 0.001초로 갈리기도 하는데, 시속 250km 안팎으로 결승선을 통과한다고 보면, 그 0.001초는 차 두 대의 약 7cm 차이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작 그 미세한 차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건 인간의 판단이다 — Masi의 결정, Briatore의 음모, 코신스키의 연출. 그래서 각 랩은 하나의 계산이고, 각 피트스톱은 베팅이며, 각 세이프티카는 게임판을 리셋하는 한 수다. 기계와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의 정점에 있는 스포츠가, 정작 가장 중요한 순간에는 사람 손에 달려 있다.

그래서 F1은 영화보다 영화 같다. 픽션이 따라잡지 못할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