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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은 접혀 있다 — 안전사고, 중고 피아노, 쌍둥이 소수, 그리고 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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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사고라는 단어는 볼 때마다 조금 이상하다. 안전과 사고 — 정반대의 두 단어가 아무 일 없다는 듯 붙어 있다. ‘안전한 사고’라는 뜻일 리는 없다. 그렇다고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일부러 만든 형용모순도 아니다. 이 단어는 그냥 시치미를 떼고 있다.

펼쳐 보면 이렇다. 사전은 안전사고를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아 일어난 사고”로 푼다.1 단어에 남은 것은 그 풀이의 양 끝, 안전과 사고뿐이다 — 가운데 술어가 통째로 빠져 있다. 여기서 ‘안전’은 형용사가 아니라 분류 표지다 — 천재지변도 질병도 아니고, 예방할 수 있었는데 부주의 때문에 났다는 뜻의 라벨. 모순처럼 보이던 것은 모순이 아니라 생략이었다.

이 작은 단어가, 최근에 차례로 들여다본 전혀 다른 네 가지와 정확히 같은 모양이었다. 조율 직후의 좋은 소리로 고물을 파는 중고 피아노 매장, 자기가 리메이크라는 사실을 스스로 아는 영화, 갈수록 성겨지면서도 무한히 서로를 찾아내는 소수, 그리고 책에서 떨어져 나온, 앞뒤로 도해가 하나씩 실린 주역 낱장 한 장. 전부 겉이 모순인 자리였고, 전부 속은 모순이 아니었다.

겉이 모순처럼 보이는 자리에는 대개 접힌 층위가 있다. 서로 다른 층에 속한 두 개의 참이 한 장으로 접혀 있고, 둘을 이어 줄 가운데 항이 생략되어 있다. 그러니 모순을 다루는 일은 반박이 아니라 펼침이다 — 그리고 펼치는 데는 비용이 든다.

접힌 자리가 위험한 이유는 따로 있다. 사람은 빈칸을 못 견딘다 — 생략된 가운데를 자기 직관으로, 공짜로 채운다. 그렇게 “소리가 좋다”에서 “좋은 피아노다”로 뛰고, “자기가 영화임을 안다”에서 “깊은 영화다”로 뛰고, “쌍둥이는 못 잡았다”에서 “아무것도 모른다”로 뛰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에서 “같은 편끼리 모이면 된다”로 뛴다. 틀리는 방식은 매번 같다. 표면의 두 끝만 보고, 그 사이를 공짜로 건넌다.

물론 모든 모순이 접힌 것은 아니다. 정말로 양립할 수 없는 제약이 있고, 말이 제 행동에 걸려 넘어지는 수행적 모순이 있고,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처음부터 모순이 되려고 태어난 문장이 있다. 그런 자리는 펼쳐 봐야 나오는 것이 없다 — 모순이 결론이거나, 모순이 목적이니까. 이 글이 찾아다니는 것은 나머지다. 서로 다른 층위의 참이 한 문장에 눌려서 모순의 얼굴을 하게 된 자리.

지난 글의 결론은 “확인 비용은 어디로도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는 반드시 치른다”는 것이었다(확인 비용). 이 글은 그 후속 질문이다 — 그 비용은 정확히 어디에 숨는가. 답을 먼저 적으면, 접힌 곳에 숨는다. 아래 다섯 자리는 접힌 이유가 하나씩 다르다. 실수로 접히고, 이익 때문에 접고, 관성으로 접히고, 원래 접혀 있고, 마지막에는 — 일부러 접어 둔 문장을 만난다.


① 실수로 접힌 것 — 가운데가 사라진 단어들

언어는 자주 쓰는 말부터 압축한다. 그 압축이 하필 반대말 두 개를 맞붙여 놓으면 안전사고 같은 우발적 모순이 태어난다. 같은 공정에서 나온 형제가 여럿이다.

유형예시글자 그대로실제 뜻
가치의 붕괴가 생략됨보안사고 · 위생사고보안/위생 + 사고보안이 뚫리고 위생이 깨져서 난 사고
분야 표지의료사고 · 금융사고의료/금융 + 사고영역에서 일어난 사고
위험이나 잃을 것을 이름에 붙임생명보험 · 화재보험생명/화재 + 보험그 위험에 대비하는 보험 — 화재는 위협을, 생명은 잃을 대상을 붙인 이름이라 정작 사망 시 지급
교차언어near miss빗나감거의 충돌할 뻔한 상황
접두사 착시flammable / inflammablein-이 부정처럼 보임둘 다 “잘 탄다”
동음 반의어방화(防火) / 방화(放火)같은 소리막기 / 불 지르기

단어가 먼 길을 오는 동안 뜻을 흘리는 경우는 전에 따라가 봤다(소리만 도착한 단어들). 이번 것은 반대다 — 뜻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 문장의 가운데가 접혀서 겉모양만 모순이 됐다.

이 층의 접힘은 펼치는 값이 가장 싸다. 사전 한 줄, 어원 한 토막이면 끝난다. 판돈도 작다 — 잘못 읽어 봐야 잠깐 갸웃하고 만다. 언어의 접힘이 이렇게 무해한 이유는 단순하다. 아무도 그 접힘으로 돈을 벌지 않는다. 한 칸 내려가면 사정이 달라진다. 접는 쪽과 펼치는 쪽의 이해가 갈리는 자리, 접힘이 전략이 되는 자리가 나온다.

② 이익 때문에 접은 것 — 소리는 싸게 나고, 수리는 비싸게 온다

중고 피아노를 사러 가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나쁜 소리가 아니다. 좋은 소리다.

나쁜 소리는 사람을 의심하게 만든다. 좋은 소리는 안심시킨다. 그런데 매장에서 좋은 첫인상은 너무 싸게 만들어진다. 막 끝낸 조율, 밝게 보이싱한 해머, 적당히 울리는 공간, 익숙한 시연곡 — 이 네 가지만 겹치면 어지간한 피아노는 좋게 들린다.2 “소리가 좋다”를 펼쳐 적으면 실은 이렇게 긴 문장이기 때문이다 — 이 공간에서, 막 조율한 상태로, 익숙한 곡을 쳤을 때, 오늘은 소리가 좋다. 구매자가 반하는 것은 이 문장의 결론부이고, 값을 치르게 되는 것은 생략된 조건절 전부다. 소리는 상태 그 자체가 아니라 상태의 결과다. 그것도 오늘 하루의 결과다. 지난 글에서 간장 한 병의 진실은 앞면이 아니라 뒷면에 있다고 썼는데, 피아노도 똑같다 — 소리는 앞면 라벨이고, 구조는 뒷면 성분표다. 다만 피아노에는 법이 강제해 주는 뒷면 라벨이 없다. 성분표를 읽으려면 캐비닛을 열어야 한다.

여기서 접혀 있는 두 층위는 오늘의 소리내일의 청구서다. 결과의 층과 원인의 층. 매장은 이 두 층을 한 장으로 접는 곳이다. 그래서 중고 피아노의 싼 가격은 종종 가격 인하가 아니라 수리비의 선불 전가다 — 할인란 속에 접혀 들어간 청구서. 판매자가 “상태 좋아요”라고 말하는 비용은 0에 가깝고, 구매자가 그 말을 확인하는 비용은 기술자의 반나절이다. C주장C확인C_{\text{주장}} \ll C_{\text{확인}} — 지난 글의 부등식이 매장 안에서 소리로 실연되고 있는 셈이다.

펼치려면 층을 나눠서 봐야 한다. 청구서가 접혀 들어가는 자리는 크게 셋이다.

보는 곳접혀 있는 청구서
구조향판, 브리지, 핀블록, 프레임, 케이스되돌릴 수 없거나 대수리가 필요한 손상 — 수리비의 최댓값
안정성튜닝핀 토크, 현의 녹, 습도 이력조율이 얼마나 버티는가 — 유지비의 기울기
액션해머 마모, 센터핀, 잭, 렛오프, 애프터터치타건이 소리로 번역되는 정확도 — 조정·정음비

용어 몇 개만 펼쳐 두면 이렇다. 핀블록(pinblock)은 튜닝핀을 마찰로 붙잡아 현의 장력을 유지하는 목재 블록이고, 렛오프(let-off)는 해머가 현에 닿기 직전 잭이 빠지며 해머를 자유운동으로 넘기는 지점이고, 애프터터치(aftertouch)는 렛오프 뒤에도 건반이 조금 더 내려가는 여유량이다. 이 값들이 고르지 않으면, 지금 소리가 아무리 좋아도 그 소리는 오래가지 않는다.

이름이 비슷해서 자주 뭉뚱그려지는 세 작업도 갈라 두자. 조율(tuning)은 음높이를 맞추는 일이고, 정음(voicing)은 해머를 다듬어 음색을 고르는 일이고, 조정(regulation)은 액션의 치수를 되돌려 터치와 반복성을 살리는 일이다. 셋은 전혀 다른 기술이고, 전혀 다른 청구서다. “관리 잘 된 피아노예요”라는 말 한마디가 셋 중 무엇을 받았다는 뜻인지조차, 듣는 쪽이 갈라서 확인해야 한다.

그래서 감정(鑑定)의 질문은 소리에 대한 것이 아니다.

중고 피아노 감정은 “이 피아노가 좋은가?”를 묻는 일이 아니다. “이 피아노를 정상 상태로 되돌리는 데 얼마가 드는가?”를 묻는 일이다.

좋은 중고 피아노의 정의도 이 질문을 따라 뒤집힌다. 지금 예쁜 소리가 나는 피아노가 아니라, 나쁜 소리를 만들 원인이 적은 피아노. 낭만적인 물건이 아니라 리스크가 낮은 기계다. 좋은 소리는 몇 시간이면 만들어지지만 좋은 구조는 흉내 낼 방법이 없다 — 겉은 싸고 속은 비싸다는 부등식이 여기서도 그대로 성립한다.

③ 관성으로 접힌 것 — 모두가 윙크하는 시대

세 번째 자리는 시장이 아니라 형식이다. 접는 사람의 악의도 이익도 없는데, 하도 접다 보니 접힌 상태가 기본값이 된 경우.

영화 두 편을 나란히 놓아 보자. 《버드맨》(2014)에서는 슈퍼히어로 ‘버드맨’으로 이름을 얻고 잊혀 가는 배우가 브로드웨이 연극으로 예술적 구원을 시도한다 — 그 역을, 배트맨이었던 마이클 키튼이 연기한다. 《아나콘다》(2025)는 “아마추어 영화인들이 1997년작 《아나콘다》를 리메이크하러 정글에 갔다가 진짜 뱀을 만난다”는 이야기다.3 두 편 다 자기가 만들어진 것임을 스스로 아는 영화, 이른바 메타 영화다. 그런데 하나는 그 형식으로 초월과 의미에 닿으려 하고, 다른 하나는 그 형식으로 진심의 민망함을 피한다 — 재탕이라는 비난이 도착하기 전에 스스로 먼저 말해 버리는 선제 방어. 같은 형식, 정반대의 영혼.

이 대비가 보여주는 것은 “이 영화는 메타다”라는 문장이 이제 거의 아무 정보도 담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모든 허구는 “가짜지만 진짜인 척하자”는 관객과의 계약 위에 서 있고, 메타는 그 계약을 일부러 깨는 순간에 발생한다 — 아니, 더 정확히는 계약서를 잠깐 화면 위로 올려놓는 순간에. 그렇다면 물어야 할 것은 깨느냐 마느냐(형식의 층)가 아니라, 방금 걸어 놓은 마법을 왜 스스로 깨는가(의도의 층)다. 더 정직해지려고 깨는 감독이 있었고(오슨 웰스), 매체가 자기를 응시하게 하려고 깨는 감독이 있었고(펠리니), 자아라는 허구를 심문하려고 깨는 작가가 있었고(카우프먼), 관객을 공모자로 끌어들이려고 깨는 감독이 있었다(하네케). 그리고 진심이 민망한 시대에 아이러니를 방어막으로 쓰려고 깨는 경우가 있다.

형식은 반복될수록 싸진다. 1924년 버스터 키튼이 영사막 안으로 걸어 들어갔을 때 그것은 전위였다.4 1960년대 유럽 예술영화에서 그것은 성숙의 표지였고, 《스크림》(1996)이 호러에 이식했을 때는 장르의 갱신이었다. 지금은 기본값이다. 전복이 관성이 되고, 윙크가 우리가 헤엄치는 물이 된다. 메타임을 알아보는 일은 공짜가 됐고 — 값이 남아 있는 일은 그 윙크가 무엇을 하는지 읽는 것뿐이다.

“메타는 영화의 생명력인가, 노쇠의 징후인가”라는 질문이 그래서 접힌 질문이다. 형식의 층에서 답하려 들면 모순에 빠진다 — 《버드맨》을 보면 생명력이 맞고, 《아나콘다》를 보면 노쇠가 맞으니까. 펼치면 질문 자체가 바뀐다. 답은 형식에 붙어 있지 않고, 작품마다 의도의 층에서 다시 매겨진다. 두 영화가 같은 시대에 공존한다는 사실이 그 증명이다. 그러니 메타는 장르가 아니라 검수 항목이다 — “자기가 가짜임을 안다”와 “그러므로 진실하다” 사이에도, 가운데는 비어 있다.

④ 원래 접혀 있던 것 — 멀어지면서 뭉치는 소수

네 번째 자리에서는 접는 사람이 아예 없다. 세계 쪽이 처음부터 접혀 있다.

소수는 갈수록 성겨진다. nn 근처에서 이웃한 소수 사이의 평균 간격은 대략 logn\log n — 수가 커질수록 한없이 벌어진다. 그런데 우리는 이제 다음 문장을 증명된 사실로 갖고 있다. 간격이 246 이하인 소수 쌍은 무한히 많다.5 수직선을 아무리 멀리 가도, 평균 간격이 수백·수천으로 벌어진 뒤에도, 서로 246 안쪽으로 붙어 선 두 소수가 영원히 다시 나타난다. 멀어지는데, 뭉친다.

모순처럼 들리면 층위가 접혀 있다는 신호다. “평균 간격이 한없이 커진다”는 평균의 층에 속한 문장이고, “가까운 쌍이 무한히 자주 나온다”는 개별 사건의 층에 속한 문장이다. 평균이 아무리 벌어져도, 무한한 수직선은 예외적으로 가까운 쌍을 무한 번 허용할 수 있다. 두 문장은 같은 층에 있지 않으므로 충돌하지 않는다.

여기서 아름다운 것은, 증명 자체가 그 접힌 두 층 사이를 건너는 기술이라는 점이다. 특정한 쌍둥이 후보 하나를 골라 “이 둘은 동시에 소수”라고 직접 통제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 개별의 층은 좀처럼 손을 대 주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계보의 증명은 질문을 평균의 층으로 옮긴다. 구멍이 kk개 뚫린 빗을 수직선 위로 밀고 다니면서, 위치마다 구멍에 걸리는 소수의 개수를 가중 평균으로 잰다. 그 평균이 1을 넘으면 — 어딘가에서는 반드시 구멍 두 개가 동시에 소수에 걸려 있어야 하고, 그 두 소수의 간격은 빗의 폭을 넘지 못한다. 평균의 층에서 잰 값 하나로 개별의 층의 사건을 강제하는 다리. 문제를 직접 푸는 대신 풀리는 좌표계로 옮기는 동작을 전에 따라가 봤는데(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옮겨질 뿐), 이것은 그 동작의 정수론 판본이다.

2013년 장이탕(Zhang Yitang)은 이 방법이 실제로 작동하는 빗을 처음 만들었다 — 폭 7천만. 필요한 소수 분포 정리를 스스로 증명해야 했고, 거기에는 유한체 위의 리만 가설 같은 대수기하학의 깊은 도구까지 동원됐다. 몇 달 뒤 메이너드와 타오는 훨씬 영리한 그물을 짜서, 이미 알려져 있던 도구만으로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 구멍 105개, 폭 600. 공동 연구 프로젝트 Polymath8b가 그 방법을 최적화해 246까지 내렸다.5 7천만에서 246까지 — 접힌 층 사이를 건너는 다리의 공학이 1년 남짓 사이에 이만큼 좋아졌다.

그리고 이 자리의 마지막 반전 — 펼치는 도구에도 접힌 사각이 있다. 체(sieve)라고 부르는 이 도구 계열은 소인수가 홀수 개인 수와 짝수 개인 수를 근본적으로 구별하지 못한다. 패리티 문제라 부르는 장벽이다.6 그래서 이 방법은 아무리 최적화해도, 아직 증명되지 않은 가장 강한 분포 추측을 다 가정해 줘도, 간격 6에서 멈춘다. 2, 곧 쌍둥이 소수에는 닿지 못한다. 세계의 접힘을 펼치던 도구가, 자기 안의 접힘 앞에서 멈추는 것이다. 246과 6이라는 숫자는 그래서 이중의 기록이다. 우리가 펼친 만큼의 크기이자, 우리 도구의 사각을 정확히 잰 값. 패리티 문제라는 이름은 패배 선언이 아니라, 이 장비가 무엇을 못 보는지까지 확인을 마쳤다는 표시다 — 수학은 “모른다”에서 멈추는 대신, 무엇을 모르는지를 정밀하게 만든다.

⑤ 일부러 접어 둔 것 — 책에서 떨어진 한 장

마지막 자리는 책에서 시작한다. 대산 김석진의 『주역강의』에서 낱장 하나가 떨어져 나왔다. 앞면에 하나, 뒷면에 하나 — 득상붕도(得喪朋圖)와 건구오도(乾九五圖)다. 버릴까 하다가 한번 들여다봤다.

득상붕도는 곤괘(坤卦) 괘사의 한 구절을 그린 도해다.

西南得朋, 東北喪朋, 安貞吉.
서남에서 벗을 얻고, 동북에서 벗을 잃는다. 바르게 머물면 길하다.

후천팔괘(後天八卦) 배치에서 서남쪽에는 음(陰)의 괘들이 모여 있고 — 곤(坤)·태(兌)·리(離)·손(巽) — 동북쪽에는 양(陽)의 괘들이 모여 있다 — 건(乾)·감(坎)·간(艮)·진(震). 음의 입장에서 서남은 같은 무리(朋)를 만나는 자리, 동북은 무리를 잃는 자리다. 묘미는 마지막에 있다. 벗을 잃어도 길하다. 자기 무리를 떠나 이질적인 것과 만나는 일이 오히려 이로울 수 있다는 것.

건구오도는 건괘(乾卦) 구오효 “飛龍在天”에 대한 문언전(文言傳) 해설을 그린 도해다.

同聲相應, 同氣相求. 水流濕, 火就燥. 雲從龍, 風從虎.
같은 소리는 서로 응하고, 같은 기운은 서로 구한다. 물은 습한 곳으로 흐르고, 불은 마른 곳으로 나아간다. 구름은 용을 따르고, 바람은 호랑이를 따른다.

동기상구(同氣相求) — 같음은 같음을 부른다. 한의학의 감응(感應), 풍수, 명리가 모두 이 한 줄과 같은 감응론의 문법 위에 서 있고, 현대어로 옮기면 유유상종이라는 사회학적 관찰부터 네트워크 효과까지 다 이 원리의 변주로 읽힌다.

이제 종이를 뒤집어 가며 읽으면 정면충돌한다. 한 면은 “다름과 만나라”(벗을 잃어도 길하다) 하고, 다른 면은 “같음끼리 모인다” 한다. 같은 낱장의 앞뒤가 정반대를 가리킨다. 나란히 펼쳐 놓고 비교할 수조차 없다 — 한 면을 읽는 동안, 다른 면은 언제나 종이 뒤에 접혀 있다.

그리고 여기서 이 글이 줄곧 쓴 문장이 비유이기를 그만둔다. 서로 다른 층에 속한 두 개의 참이 한 장으로 접혀 있다 — 말 그대로, 물리적으로, 한 장이다.

그런데 이 접힘은 앞의 넷과 결이 다르다. 단어는 실수로 접혔고, 매장은 이익 때문에 접었고, 형식은 관성으로 접혔고, 수직선은 원래 접혀 있었다. 주역은 일부러 접어 둔다. 두 문장을 잇는 가운데 항 — 위(位, 자리)와 시(時, 때) — 를 비워 놓고, 채우는 일을 읽는 사람에게 넘긴다. 어느 문장이 지금 참인지는 네가 어느 자리, 어느 때에 서 있느냐에 달렸다는 것이다. 이 텍스트가 수천 년을 산 비결이 이 설계라고 생각한다. 접힌 문장은 고정된 답을 주는 대신, 펼치는 사람의 자리마다 다르게 펼쳐진다. 답의 책이 아니라, 가운데를 묻는 책.

앞 절의 수직선이 여기 겹쳐 보인다. 성겨짐과 뭉침 — 벗을 잃는 것과 같은 기운이 서로를 찾는 것 — 이 한 수직선 위에서 동시에 참이었다. 층위만 나누면. 주역이 한 장의 앞뒤로 나눠 그려 놓은 것을, 정수론은 평균과 ‘무한히 자주’로 나눠 증명했다. 물론 이것은 은유다. 그러나 은유가 가리키는 구조는 정확히 같다 — 반대처럼 보이는 두 문장이, 층을 나누는 순간 동시에 참이 되는 구조.

덧붙이면, 동기상구 쪽 절반은 이제 알고리즘이 대신 실행해 준다. 사는 동네, 직업, 취향, 구매 이력, 읽는 글 — 비슷한 것이 비슷한 것을 계속 불러온다. 득붕(得朋)은 점점 공짜가 된다. 그래서 마흔이 넘으면 무게가 반대쪽으로 옮겨 간다. 비싸게 남는 쪽은 상붕(喪朋)이다 — 내 무리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곳으로 나가서, 공명 안에서는 확인할 수 없던 것을 확인하는 일. 곤괘가 벗을 잃어도 길하다고 적어 둔 자리가 정확히 여기라고, 이제는 읽게 된다.

요즘 주변에서는 아이 이름을 지으며 사주를 보고, AI로 일하는 사람이 명리로 결정을 내린다. 이걸 미신이라 비웃기도 쉽고, 신비롭다고 빠지기도 쉽다. 둘 다 게으르다 — 그리고 이제 그 게으름의 정체를 정확히 말할 수 있다. 둘 다 접힌 문장을 접힌 채로 읽는 방식이다. 비웃음은 “모순이네” 하고 펼치기 전에 버리는 것이고, 신비주의는 “심오하네” 하고 펼치지 않은 채 삼키는 것이다. 하나는 펼침 비용의 지불 거부, 하나는 펼침 자체의 면제. 읽기는 하나뿐이다. 위와 시를 물으며, 접힌 것을 펼치는 것.


한 줄로

다섯 자리를 한 표로 접으면 이렇다.

자리겉모순접혀 있던 것펼치는 값
단어안전 + 사고생략된 가운데 술어사전 한 줄
매장좋은 소리 + 고물오늘의 소리와 내일의 청구서기술자의 반나절
형식생명력 + 노쇠형식과 의도그 윙크의 전후 맥락을 아는 눈
수직선멀어짐 + 뭉침평균과 ‘무한히 자주’수학자 몇 세대
상붕(喪朋) + 동기상구(同氣相求)위(位)와 시(時)자기 자리를 아는 일

오른쪽 열은 아래로 갈수록 비싸진다. 사전 한 줄은 공짜에 가깝고, 기술자의 반나절은 수십만 원이고, 수직선의 접힘 하나를 반쯤 — 2가 아니라 246까지 — 펼치는 데는 수학자 몇 세대가 들었다. 마지막 줄의 값에는 아직 시세가 없다.

지난 글은 확인 비용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데서 끝났다. 이 글은 그 비용의 지도다. 어디서 치러야 할지 모르겠으면, 모순처럼 보이는 자리를 찾으면 된다. 겉이 모순이면 속은 대개 생략이고, 생략된 가운데는 공짜로 채워지지 않는다 — 그 자리가 바로 확인 비용이 접혀서 숨어 있는 곳이다.

안전사고는 안전한 사고가 아니다. 좋은 소리는 좋은 피아노가 아니다. 메타는 깊이가 아니다. 246은 2가 아니다. 동기상구는 같은 편끼리만 살라는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다 틀린 말은 아니다 — 가운데를 복원하면, 문장은 다시 움직인다.

그 한 장은 다시 책에 끼워 뒀다. 접힌 것들은 대개 그렇게, 펼칠 사람을 기다리면서 제자리에 꽂혀 있다.

주석

  1. 표준국어대사전은 안전사고를 “공장이나 공사장 등에서 안전 교육의 미비, 또는 부주의 따위로 일어나는 사고”로 풀이한다. 국립국어원 새국어소식(2000년 6월호)이 소개한 옛 사전 풀이는 “공장, 광산, 공사장 등에서, 안전 수칙(安全守則)을 지키지 않음으로써 일어나는 사고”였다. 두 풀이 다 가운데에 술어를 하나씩 세워 둔다. 다만 이 단어가 실제로 긴 꼴로 쓰이다 줄었다는 기록은 없다 — 흔히 인용되는 ‘안전소홀사고(安全疏忽事故)’도 사전에 오른 적 없는, 신문 칼럼이 뜻을 되짚어 본 제안형이고(전북일보 「한자교실」, 2000년 10월 13일), 새국어소식의 필자 역시 원형을 밝히는 대신 ‘안전 부주의 사고’나 ‘안전 수칙 위반 사고’로 바꿔 쓰자고 제안했다. 그러니 여기서 말하는 생략은 어원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풀이의 구조다. 의도된 형용모순(oxymoron)이 아니라 생략이 만든 우발적 모순이라는 점이 결정적 차이다. 같은 구조의 형제로는 보안사고·위생사고가 가장 가깝다.

  2. 보이싱(voicing, 정음)은 해머 펠트의 탄력과 밀도를 바늘과 사포로 조절해 음색을 다듬는 작업이다. 마모로 딱딱해진 해머도 표면을 갈아 내면 당장은 고른 소리를 낸다 — 남은 펠트가 줄어드는 값을 치르고서.

  3. 톰 고미칸 감독, 잭 블랙·폴 러드 주연. 고미칸이 각본가 케빈 에튼과 함께 만든 전작 《미친 능력》(The Unbearable Weight of Massive Talent, 2022)은 니콜라스 케이지가 “니콜라스 케이지” 역을 맡는 같은 계열의 메타 코미디다.

  4. 《셜록 주니어》(1924)에서 키튼이 연기하는 영사기사는 꿈속에서 상영 중인 영화의 화면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이후 계보의 굵은 마디들 — 펠리니 《8½》(1963), 트뤼포 《아메리카의 밤》(1973), 알트먼 《플레이어》(1992), 카우프먼 각본의 《존 말코비치 되기》(1999)와 《어댑테이션》(2002).

  5. 장이탕(2013)은 간격 7천만 이하의 소수 쌍이 무한함을 증명했다. 빗의 구멍은 약 350만 개였고, 등차수열 위 소수의 분포 수준을 1/2+1/5841/2 + 1/584까지 끌어올린 자체 정리가 엔진이었으며, 그 증명에 들리뉴가 증명한 유한체 위의 리만 가설(베유 추측)이 쓰였다. 빗과 가중 평균이라는 틀 자체는 골드스턴–핀츠–이을드름(GPY, 2005)이 만들었지만, 이들은 분포 수준 1/21/2의 벽에 막혀 유계 간격까지 가지 못했다. 메이너드와 타오(2013)는 다차원 셀베르그 체로 가중치를 다시 설계해, 기존의 봄비에리–비노그라도프 정리(1/21/2 미만)만으로 구멍 105개·폭 600을 얻었고, Polymath8b(2014)가 이를 246까지 최적화했다. 덧붙이면 빗의 구멍 배치는 아무렇게나 뚫으면 안 된다 — 어떤 소수로 나눠도 나머지 하나쯤은 비워 두는 admissible 조건을 만족해야, 구멍들이 작은 소수의 배수에 조직적으로 막히는 일을 피할 수 있다. 2

  6. 체 방법은 약수 구조로 수를 걸러 내는데, 그 과정의 부호 상쇄 때문에 소인수 개수의 홀짝을 식별하지 못한다 — 셀베르그가 지적한 패리티 장벽이다. 일반화된 엘리엇–할버스탬 추측(GEH)을 가정하면 이 계열 방법으로 간격 6까지 내려가지만 거기서 멈춘다. 쌍둥이 소수(간격 2)로 가려면 패리티 장벽을 우회하는 새로운 종류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 중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