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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은 투영이다 — 사라진 차원을 복원하는 법
AI 관련 뉴스를 시간순으로 읽으면 아주 깔끔한 이야기가 하나 나온다. 처음엔 GPU가 부족했다. 그다음엔 HBM이 병목이었다. 그다음엔 CoWoS라는 생소한 패키징 공정이 발목을 잡았다. 요즘은 전력이다 — 변압기, 계통접속, 냉각. 병목이 바통을 넘기며 달리는 릴레이처럼 읽힌다. 하나가 풀리면 다음 주자가 나온다.
날짜를 맞춰 보면 이 이야기가 무너진다.
TSMC의 웨이저자(C.C. Wei) CEO가 실적 발표에서 “바로 이 며칠 사이에 어떤 고객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후공정 capacity, 특히 CoWoS를 크게 늘려 달라는 요청이었다”고 말한 것은 2023년 4월 20일이다.1 엔비디아가 시장을 뒤집어 놓은 그 유명한 가이던스 — 다음 분기 매출 110억 달러, 컨센서스의 1.5배 — 를 낸 것은 5월 24일이다.2 패키징 병목은 GPU 병목이 ‘시작’되기 한 달도 더 전에 이미 고객이 전화를 걸어 사정할 만큼 걸려 있었다.
HBM은 더하다. SK하이닉스가 HBM3 양산을 시작했다고 발표한 날은 2023년이 아니라 2022년 6월 8일이다.3 릴레이의 세 번째 주자가, 첫 번째 주자보다 1년 가까이 먼저 출발선을 떠나 있었다.
제약들은 순서대로 오지 않았다.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 순서대로 온 것은 제약이 아니라 제약의 가격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읽은 그 깔끔한 릴레이 서사는 세계에 대한 기술이 아니라, 세계를 어떤 축에 눌러 찍은 그림자였다. 그림자는 실제로 그렇게 생겼다 — 다만 그 축을 밝히지 않으면, 그림자의 모양이 물체의 모양으로 오해된다.
최근에 전혀 다른 네 가지를 차례로 들여다봤다. AI 데이터센터의 병목 구조, 우주에서 나사가 저절로 뒤집히는 자니베코프 효과, Donald Knuth가 수학자로서 몇 등이냐는 물음, 그리고 레비스트로스부터 ANT까지 이론이라는 렌즈들. 넷은 아무 상관이 없어 보였는데, 틀리는 방식이 전부 같았다. 여러 차원을 가진 대상을 한 축에 눌러 찍고, 그 그림자를 대상 자체로 읽는 것.
설명은 현실을 압축한 투영이다. 좋은 설명은 무엇을 보존했고 무엇을 잔차로 버렸는지 표시한다.
이 글은 앞선 두 글의 세 번째 짝이다. 처음에는 셋을 이렇게 적어 두었다 — 번역은 가역이고, 접힘은 펼치면 복원되고, 투영만 되돌릴 수 없다. 깔끔한 3단계였다. 그런데 앞 글을 다시 읽고 그 문장을 지웠다.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옮겨질 뿐이 번역이라 부른 것 안에는 이미 서로 다른 사상이 섞여 있다. 푸리에 변환은 역변환이 있고 파세발 정리가 에너지 보존을 보장하는, 잃는 것 없는 재표현이다. 그런데 같은 글의 ④절은 SHA-256을 두고 이렇게 쓴다 — “이 번역에는 애초에 역함수가 없고(다대일 함수다)”, “입력의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다대일이고, 거의 전부를 버린다. 이 글이 투영이라 부르려는 바로 그것이 거기 이미 있었고,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모순은 접혀 있다의 접힘도 자동 복원 장치가 아니다. 그 글의 결론은 오히려 펼치는 데 값이 든다는 것이었다 — 사전 한 줄부터 수학자 몇 세대까지, 그리고 마지막 줄의 값에는 아직 시세가 없다고.
그러니 정직하게 다시 적으면 이렇다.
| 동작 | 무엇을 하는가 | 원래 상태로 |
|---|---|---|
| 번역(재표현) | 표현을 바꾼다 — 셋 중 가장 상위 개념 | 사상마다 다르다. 푸리에는 가역, 해시는 비가역 |
| 접힘 | 층위를 겹치고 가운데 항을 생략한다 | 재구성 가능 — 단 값을 치러야 하고, 유일하지도 않다 |
| 투영4 | 여러 원상을 같은 출력으로 합친다 | 원래 상태를 유일하게 지목할 수 없다 |
그러니까 투영은 번역과 나란한 항이 아니라 번역의 한 갈래다. 그리고 접힘과 투영을 가르는 것은 복원 가능성의 유무가 아니라, 가운데 항이 어디에 남아 있느냐다. 접힌 것은 문맥과 증거에 흔적이 남아 재구성할 길이 있다 — 값이 비쌀 뿐이다. 투영된 것은 같은 출력으로 보내진 원상들이 서로 구별되지 않는다 — 값을 더 치른다고 나오지 않는다. 없는 것을 사는 시장은 없다.
그리고 이 표를 고치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나는 처음에 “번역은 가역이다”라고 적었다. 앞 글에 비가역 번역만 다루는 절이 통째로 있는데도 그랬다. 셋을 깔끔한 3단계로 만들고 싶어서 앞 글의 한 절을 시야 밖으로 밀어낸 것이다. 이 글의 첫 번째 투영 오류는 이 글이 저질렀다.
아래 네 자리는 무엇을 버렸는지가 각각 다르다. 시간을 만들면서 버리고, 기준계를 지우면서 버리고, 순위를 만들면서 버리고, 마지막에는 — 버리는 것이 도구의 기능인 경우를 만난다.
① 시간을 만든다 — 병목 스택이 릴레이처럼 보일 때
AI 데이터센터가 실제로 뽑아내는 처리량은 대략 이런 모양이다. 처리량 를 하나 정하고(토큰/초든 학습 FLOP/초든), 자원 의 총가용량을 , 처리량 한 단위를 내는 데 드는 자원 의 양을 라 하면
나눗셈이 중요하다. GPU 개수, HBM 대역폭, 전력 MW, 냉각 kW를 그대로 에 넣을 수는 없다 — 단위가 다르면 크기를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건 깐깐함이 아니라 모델이 되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는 전력을 고르고, 같은 사실을 로 다시 쓰면 대역폭을 고른다. 답이 단위 선택에 따라 바뀌면 그건 모델이 아니다. 로 나눠 놓으면 모든 항이 처리량 단위가 되고, 그제야 비교가 성립한다.
이 형태에는 이름이 있다. 경제학에서는 레온티에프 생산함수 — 투입 간 대체탄력성이 0인 고정비율 기술이고, CES 함수의 극한이다. 전산학 판본은 루프라인 모델인데, 거기서도 식은 로 쓴다 — 대역폭(바이트/초)에 연산강도(FLOP/바이트)를 굳이 곱하는 이유가 바로 두 항의 단위를 FLOP/초로 맞추기 위해서다.5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과 골드랫의 제약이론이 같은 구조의 선조다.
이다. 합이 아니다. 이 구조에는 시간축이 없다 — 모든 인자가 항상 동시에 평가된다. 하나가 낮으면 나머지가 아무리 높아도 소용없고, 낮은 인자를 올리면 그다음으로 낮은 것이 즉시 드러난다. 병목이 ‘이동’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전부 거기 있었고 우리가 가장 낮은 것만 보고 있었을 뿐이다.
이 구조가 가격에 대해 말해 주는 것이 잔인하다. 는 선형계획 subject to 의 값이고, 자원 한 단위의 한계가치는 그림자가격 다. 병목이 하나로 뚜렷하면 값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 병목 자원은 , 나머지 전부는 정확히 0이다. 전력이 묶여 있을 때 GPU를 더 사는 것의 한계가치는 작은 게 아니라 없다.5
그런데 시장이 읽어 낸 이야기에는 시간축이 있었다. 순서까지 또렷하다.
| 시점 | 시장이 발견한 것 | 실제로는 |
|---|---|---|
| 2023년 5월 24–25일 | GPU — 엔비디아 가이던스 110억 달러, 다음 날 주가 +24%, 시총 +약 1,840억 달러2 | 이미 CoWoS가 한 달 전부터 병목 |
| 2023년 7월 20일 | CoWoS — “후공정, 특히 CoWoS는 고객 수요의 100%를 채우기 매우 어렵다”1 | 2022년부터 증설 압박 누적 |
| 2024년 5–6월 | HBM · 전력 — 하이닉스 “올해 물량 완판, 내년도 거의 완판”, 비스트라 S&P500 수익률 1위6 | HBM3 양산은 2022년 6월 시작 |
물리적 제약은 동시에 걸려 있었는데, 왜 가격은 줄을 서서 왔을까. 답이 재무제표에 있다. 각 제약은 그것을 소유한 회사의 손익계산서에서 보이지 않았다.
CoWoS가 없어서 고객이 전화로 사정하던 2023년, TSMC의 서버 AI 프로세서 매출 비중은 전체의 약 6%였다. 같은 7월 20일 콜에서 TSMC는 그해 연간 매출이 달러 기준 약 10% 감소할 것이라며 전망치를 낮췄다(실제 −8.7%).1 세계에서 가장 귀한 병목을 손에 쥔 회사의 그해 실적은 역성장이었다.
SK하이닉스는 더 극적이다. 2023년 HBM3 매출은 전년 대비 5배 넘게 뛰었다. 같은 해 회사는 매출 32.77조 원에 영업손실 7.73조 원, 순손실 9.14조 원을 냈다.3 4분기에 겨우 3,460억 원의 영업이익으로 돌아섰지만 그 분기조차 순손실 1.38조 원이었다. 애초에 회사는 2023년에 HBM 매출을 따로 공시하지도 않았다 — HBM이 D램 매출의 30%라는 숫자가 처음 나온 건 2024년 3분기다. 즉 2023년에 HBM 병목을 재무제표로 확인하는 일은 불가능했다. 범용 D램 불황이라는 큰 숫자가 HBM이라는 작은 숫자를 완전히 덮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시장이 실제로 한 일이 보인다. 시장은 6차원 구조를 “지금 누구 실적에 보이는가”라는 한 축에 투영했다. 그 축 위에서 제약들은 자연스럽게 줄을 선다. 실적에 먼저 뜨는 것이 먼저 오고, 손실에 파묻힌 것은 나중에 온다. 그렇게 시간이 만들어진다.
테마가 나타난 순서는 병목이 생긴 순서가 아니다. 병목이 손익계산서 위로 떠오른 순서다.
전력 층은 이 구조를 한 번 더 보여 준다. 규모부터 적으면, 국제에너지기구는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를 약 415TWh — 세계 전력소비의 약 1.5% — 로 추정하고, 기준 시나리오에서 2030년 약 945TWh로 두 배 이상 늘어난다고 전망한다. 다른 모든 부문을 합친 것보다 네 배 넘게 빠른 성장이다.7 그런데 이 수요를 받아 낼 설비 쪽 숫자는 훨씬 느리게 움직인다. 변압기 리드타임은 2021년 약 50주에서 2024년 평균 120주로 늘었고, 대형 변압기는 80–210주다. 가격은 팬데믹 이전 대비 80% 높아졌다.6 미국 계통접속 대기열에는 2024년 말 기준 약 2,290GW가 줄을 서 있는데, 이는 기존 미국 발전설비 총량(약 1,320GW)의 두 배에 가깝다. 2023년에 준공된 전형적 프로젝트는 접속 신청부터 상업운전까지 약 5년이 걸렸다 — 2015년엔 3년, 2008년엔 2년 미만이었다.6 이 숫자들은 2023년에도 이미 사실이었다. 다만 그때 이것은 유틸리티 회사의 지루한 규제 이슈였지 AI 이야기가 아니었다.
한 가지 정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다. 위의 공식도 투영이다. 세 군데서 그렇다. 첫째, 레온티에프 형태 자체가 대체가 전혀 없다고 가정한다 — 실제로는 배치 크기나 정밀도를 조정해 대역폭을 연산으로 어느 정도 바꿔 낼 수 있다. 둘째, 인자들이 독립이라고 가정하지만 실제로는 얽혀 있다 — 전력이 싸고 풍부한 곳은 대개 냉각도 유리하고, 패키징 capacity는 HBM 공급과 계약으로 묶여 있다. 셋째, 저 식은 단일 균질 출력에만 성립한다. 프리필과 디코드, 학습과 추론이 섞인 실제 부하는 닫힌 형태의 이 아니라 다품목 선형계획이고, 거기엔 깔끔한 답이 없다. 병목 둘이 동시에 묶이면 에 꺾임이 생겨 는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 위에서 “나머지는 정확히 0”이라고 단언한 그 문장도 병목이 하나로 뚜렷할 때만 참이다. 은 릴레이 서사보다 덜 틀린 그림이지, 세계 자체가 아니다. 이 글이 주장하는 것은 “투영하지 말라”가 아니다. 투영은 피할 수 없다. 주장은 어느 축에 투영했는지 적으라는 것뿐이다.
② 기준계를 지운다 — 뒤집힌 것은 물체이지 각운동량이 아니다
1985년, 블라디미르 자니베코프는 죽어 버린 살류트 7호를 되살리러 소유즈 T-13을 타고 올라갔다. 전력이 나간 우주정거장에 도킹해 수리에 성공한, 우주 역사상 손꼽히는 작업이었다.8 그가 궤도에서 목격한 것은 정작 다른 것이었다. 풀려나간 나사 하나가 회전하며 날아가다가 주기적으로 180도씩 홱 뒤집혔다. 일정한 간격으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역학은 명확하다. 서로 다른 세 주관성모멘트 를 가진 강체를, 외력 없이 중간축 둘레로 돌리면 그 회전은 불안정하다. 오일러 방정식을 중간축 둘레의 정상회전 근처에서 선형화하면 이렇게 된다.9
이므로 분자의 두 인자가 모두 양수다. 즉 꼴이고, 미세한 흔들림이 지수적으로 자란다. 성장률은
이 식에 예쁜 구석이 있다. 다. 더 빨리 돌린다고 안정해지지 않는다. 정확히 비례해서 뒤집힘이 더 빨리 올 뿐이다. 최대축과 최소축 둘레의 회전에서는 같은 계산의 괄호 부호가 음수가 되어 — 진동하고 만다. 그래서 세 축 중 가운데만 불안정하다.
이제 이 글의 관심사다. 뒤집히는 것은 정확히 무엇인가.
각운동량 은 외부 모멘트가 없으므로 관성계에서 크기도 방향도 정확히 불변이다. 근사적으로가 아니라 엄밀하게. 이 분야의 표준 논문들이 실험실 좌표계의 축을 아예 방향으로 고정해 놓고 계산을 시작할 만큼 확고한 상수다.9 뒤집히는 것은 에 대한 물체의 자세다. 몸체 좌표계에서 보면 각운동량의 중간축 성분 의 부호가 뒤바뀐다 — 이 몸을 기준으로 에서 로 건너간다. 관성계에서는 아무것도 움직이지 않았고, 몸이 주위로 돌아누운 것이다.
그러니 “각운동량이 뒤집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서술조차 틀렸다. 그렇게 보이지도 않는다. 카메라가 각운동량을 볼 수 없을 뿐이다. 카메라가 보는 것은 자세 하나뿐이고, 자세는 상태의 전부가 아니다.
관찰된 모양은 상태 그 자체가 아니다. 기준계를 지우면 자세의 변화가 보존량의 변화로 둔갑한다.
여기서 투영 오류가 어떻게 증폭되는지가 재미있다. 이 효과에는 “10년간 기밀이었다 — 지구가 뒤집힐까 봐”라는 이야기가 따라다닌다. 추적해 보면 출처가 러시아 타블로이드와 음모론 블로그, 선정적 TV 프로그램으로 끝난다. 학술 문헌에도 문서고에도 근거가 없다.8 반면 정작 대중과학 글이 출처 없이 반복한다고 의심받던 나사 일화는, 페트로프와 볼로딘이 러시아과학아카데미의 심사 저널 Doklady Physics에 1985년의 관측을 기록하며 “이 뒤집힘은 동일한 시간 간격으로 반복되었다”고 명시해 두었다. 소문은 근거가 없고, 근거는 소문 취급을 받았다.
지구가 뒤집힐 수 없는 이유는 같은 정리가 부호만 바꿔서 답한다. 지구의 주관성모멘트는 이고, 가 자전축(극축)이다 — 지구는 편평한 회전타원체라 극축이 최대관성축이다. 규격화하면 , 이고, 역학적 편평률은 , 약 다.10 최대축 둘레의 회전은 안정하다. 지구는 자니베코프 뒤집힘의 대상이 아니다 — 애초에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실제 물체에는 오일러의 강체 가정에 없는 것이 있다. 에너지 소산이다. 각운동량 이 보존되는 동안 운동에너지는 보존되지 않고, 주축 회전에서 이므로 최대관성축 회전이 주어진 에서 에너지 최소 상태다. 그래서 소산은 오일러 방정식이 최대·최소축에 부여한 대칭을 깬다. 논문의 표현이 좋다 — 자니베코프가 그 나사를 충분히 오래 지켜봤다면, 결국 최대축 둘레로 도는 것을 보았을 것이다. 세차 완화가 장기적으로 자니베코프 효과를 죽인다.10
그리고 지자기 역전은 아예 다른 층의 사건이다. 그것은 외핵의 난류 대류가 만드는 지오다이너모 현상이다. 뒤집히는 것은 자기장의 극성이고, 고체 지구는 돌아눕지 않으며 자전축은 그대로다.11 마지막 완전 역전인 브뤼느–마쓰야마 역전은 약 77만 3천 년 전이다. 흔히 인용되는 78만 년은 퇴적물이 잔류자화를 더 깊은 곳에서 고정하는 효과 때문에 오래된 쪽으로 치우친 옛 값이다. 역전은 순간적이지도 않아서 수백에서 수천 년이 걸리고, 주기도 없다 — 1만 년 만에 오기도 하고 5천만 년 넘게 안 오기도 한다.
정리하면 “지구가 뒤집힌다”는 한 문장 안에 서로 무관한 세 층이 눌려 들어가 있다. 강체 회전(자니베코프), 외핵 유체역학(지자기 역전), 그리고 맨틀 질량 재분포로 자전축에 대해 지각이 미끄러지는 진극배회. 세 층은 원인도 시간 규모도 주체도 다르다. 이것들을 한 문장으로 투영하면 남는 것은 공포 하나뿐이고, 버려지는 것은 물리 전부다.
③ 순위를 만든다 — 능력 벡터를 한 숫자로 눌러 버릴 때
“Knuth는 수학자로서 몇 등쯤 되나?”
이 질문은 답하기 어려운 게 아니라, 답할 수 없게 설계되어 있다. 이유를 보려면 그의 성취를 있는 그대로 벡터로 적어 보면 된다.
순위란 이 벡터에 가중치를 곱해 스칼라로 만드는 함수다.
를 밝히지 않으면 는 사실처럼 말하는 의견이 된다. “몇 등이냐”는 물음이 숨기는 것은 답이 아니라 다.
그런데 한 칸 더 내려가면 문제는 가중치를 숨긴 것보다 깊다. 성취 공간에는 애초에 순위가 없다. 있는 것은 부분순서뿐이다 — 모든 축에서 낫거나 같을 때만 우위라고 정의하면,
Knuth와 그로텐디크는 이 관계로 비교되지 않는다. 어느 쪽도 상대를 모든 축에서 누르지 못하기 때문이다. 힐베르트도, 폰 노이만도, 에르되시도 서로 대부분 비교 불가능하다. 부분순서를 전순서로 늘리는 방법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유일하지 않다. 서로 다른 가 서로 다른 줄 세우기를 낳고, 각각은 자기 축 위에서 전부 옳다.
그러니 “몇 등이냐”가 저지르는 일은 의견을 사실로 위장하는 정도가 아니다. 비교 불가능한 것들을 비교 가능하게 만드는 것 — 원래 없던 관계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순위표에서 사라진 차원은 성취의 축들이 아니라, 축들 사이에 답이 없다는 사실 자체다.
Knuth의 성분들을 실제로 채워 보면 각 축이 서로 얼마나 다른지 드러난다. 그는 순수수학 박사다 — 1963년 칼텍, 마셜 홀 지도, 학위논문은 「유한 반체와 사영평면」.12 조합론에 남은 결과도 있다. Robinson–Schensted–Knuth 대응의 K가 그다. 다만 정확히 하자면 대응 자체는 로빈슨(1938)과 셴스테드(1961)의 것이고, Knuth의 1970년 논문이 한 일은 그것을 순열에서 음이 아닌 정수 행렬로 확장하고, 행렬을 전치하면 와 가 맞바뀐다는 정리와 ‘커누스 관계’를 얹은 것이다.13 Knuth–Bendix 완성 알고리즘(1970), 위쪽 화살표 표기(1976), 그리고 ‘초현실수(surreal numbers)‘라는 이름 — 콘웨이가 구성한 수 체계에 이름을 붙인 사람이 Knuth다. 콘웨이 본인은 그냥 ‘수’라고 불렀고, 2001년 재판 서문에 가서야 “이 이름을 지어 준 Knuth에게 매우 감사한다… ‘초현실수’가 훨씬 낫다”고 인정했다.13
그런데 그가 가장 유명한 바로 그 표기법에서, 그는 계속 자기 지분을 덜어 낸다. 빅오 표기는 그의 것이 아니다 — 1976년 논문에서 그는 란다우의 말을 인용해 의 첫 등장이 1894년 바흐만의 책이라고 스스로 적었다. 그가 실제로 한 일은 를 전산학용으로 다시 정의하고 를 퍼뜨린 것이다. 하디–리틀우드의 는 “무한히 많은 에 대해”였는데, Knuth는 “충분히 큰 모든 에 대해”로 강화하는 편이 전산학에는 “훨씬 적절하다”고 썼다. 그리고 같은 논문에서 를 두고 “타잔과 패터슨이 각각 독립적으로 내게 제안했다”고, 집합 기반 정의는 리베스트의 것이라고 밝힌다.14 자기 이름이 붙은 자리마다 그는 다른 사람 이름을 적어 넣는다.
그러면 그는 순수수학자인가. 여기서 기관들이 이미 를 적용해 놨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미국 국립과학원에서 그의 자리는 3부(공학·응용과학) 34분과(전산정보과학)다. 1부의 11분과(수학)가 아니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에서도 그는 ‘기계·정보과학’ 분과 소속이지 ‘수학’ 분과가 아니다.15 수학 단체들이 준 상은 대체로 저술에 대한 것이다 — AMS 스틸상(1986), MAA 포드상(1975, 1993). 명성을 만든 상들(튜링 1974, 국가과학훈장 1979, 교토상 1996)은 알고리즘과 프로그래밍을 인용한다.
그런데 같은 스틸상 인용문은 이렇게 적었다. TAOCP는 “최근 수십 년간 수학 자체의 어떤 책 못지않게 이 세대 학생들의 수학 교육에 기여했다.”15 같은 사람, 다른 , 다른 답. 순위가 데이터가 아니라 함수의 출력이라는 증거가 이보다 깔끔할 수 없다.
‘알고리즘 해석학의 창건자’라는 흔한 요약도 축을 밝히면 흔들린다. 그는 1967년 가을 산타바버라의 학회에서 전공을 묻는 질문에 답할 이름이 없다는 걸 깨닫고 ‘analysis of algorithms’라는 말을 만들었고, 1970년 니스 세계수학자대회 초청 강연으로 밀어붙였다.16 하지만 알고리즘의 수학적 해석 자체는 그보다 앞선다. 하트마니스와 스턴스는 1965년 계산복잡도를 독립적으로 창건했고, 그 논문은 순수수학 저널인 Transactions of the AMS에 실렸다.16 그리고 결정적으로 — 알고리즘 해석이 그 이전에 이미 있었다는 사실을 문서로 남긴 사람이 Knuth 본인이다. 그는 1970년에 「폰 노이만의 첫 컴퓨터 프로그램」을 발표해 1945년의 손글씨 원고를 분석했다. 폰 노이만은 그 메모에서 명령어 집합이 “복잡한 과정의 논리적 제어 수단으로 충분한지” 보려고 정렬을 골랐고, 마지막에 수행시간을 밀리초로 계산해 두었다. Knuth는 그 값을 옮겨 적으면서 25년 묵은 폰 노이만의 산술 실수(2.61을 1.61로 쓴 것)까지 잡아냈다.17 창건자 서사를 가장 정확하게 깎아 내린 사람이 창건자로 지목된 당사자다.
ACM의 공식 인용문이 정직하다. 1974년 튜링상은 “알고리즘 해석과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에 대한 주요 기여, 특히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이라는 제목의 연속 저작을 통한 기여”라고만 적었다.12 창건 주장은 없다.
그래서 원래 물음의 확장판 — 수학을 잘하면 뭐든 잘하나 — 도 같은 오류의 변주다. 이 물음은 능력을 하나의 스칼라로 가정한다. 조금 낫게 쓰면 이렇다. 수학 능력은 형식화 가능한 문제에 대한 강력한 가속기다. 전이(transfer)에는 거리가 있고, 가까운 전이는 잘 되고 먼 전이는 잘 안 된다.
| 전이 | 분야 | 왜 |
|---|---|---|
| 강함 | 알고리즘 · 코딩 · 물리 · 통계 · 최적화 · 암호 | 대상이 이미 형식화되어 있어 추상화·불변량·복잡도 감각이 그대로 먹힌다 |
| 중간 | 철학 · 음악 이론 · 작곡 · 글쓰기 | 논증 구조와 형식 분석은 골격을 주지만, 문체·청각·미감은 별도 |
| 약함 | 피아노 터치 · 정비 손감각 · 협상 · 리더십 | 병목이 몸의 기억과 현장 판단에 있어 수학이 닿는 층이 아니다 |
전에 중고 피아노를 두고 좋은 소리와 좋은 구조는 다른 층이라고 썼는데(모순은 접혀 있다), 여기서도 같다. 수학은 악보와 구조를 읽는 눈을 주지만 소리를 만드는 손과 귀는 따로 훈련해야 한다. 성과를 굳이 적으면 이런 모양에 가깝다.
수학 능력은 이 중 앞쪽 몇 성분을 강하게 밀어 준다. 순위표는 이 벡터를 한 숫자로 눌러 놓고, 눌렀다는 사실을 지운다.
Knuth 본인이 이 문제를 대하는 방식이 마음에 든다. TeX의 버전 번호는 로 수렴한다 — 3.0 이후 갱신마다 자릿수를 하나씩 붙여 지금은 3.141592653이고, METAFONT는 로 수렴해 2.71828182다. 그는 자기 사후에 이루어질 “절대적으로 마지막 변경”으로 버전을 정확히 와 로 만들라고 유언해 두었다. 그 시점에 남은 모든 버그는 기능이 된다.18 오차를 0으로 만드는 대신, 오차가 어디서 멈추는지를 명시하는 쪽. 이 글이 말하는 잔차 표시가 바로 그것이다.
④ 렌즈를 세계로 착각한다 — 선택적 시야가 전체 원인이 될 때
네 번째 자리에서는 투영이 실수가 아니다. 그게 도구의 기능이다.
이론은 세계를 설명하는 답안지가 아니라 현실을 분해하는 공구다. 좋은 공구일수록 어떤 성분은 선명하게 보이게 하고 나머지는 시야 밖으로 민다. 문제는 공구를 오래 쓰다 보면 시야 밖으로 밀린 것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데 있다.
여기서 이 글 자신을 한 번 더 조심해야 한다. 이론이 하는 일이 차원을 버리는 것뿐이라고 말하면, “설명은 투영이다”라는 이 글의 명제가 제 대상을 다시 납작하게 만든다. 이론은 버리기만 하지 않는다 — 관찰되지 않던 축을 새로 세우기도 한다. 정신분석은 무의식을, 마르크스는 생산관계를, 제어이론은 숨은 상태변수를, 인과모형은 관찰값에 없던 개입과 반사실을 세계에 추가한다. 이것들은 데이터에서 읽어 낸 성분이 아니라 데이터를 설명하려고 세운 축이다. 그러니 정확히 적으면 이렇다 — 모든 이론에는 무엇을 볼지 고르고 나머지를 잔차로 미루는 투영층이 있다. 그러나 좋은 이론은 동시에 관찰되지 않던 상태공간을 새로 구성한다. 버리는 동작과 세우는 동작이 같은 공구 안에 들어 있다.
| 렌즈 | 선명해지는 것 | 잔차로 밀리는 것 |
|---|---|---|
| 레비스트로스 | 요소가 아니라 관계가 의미를 만든다 — 신화·친족의 조합적 구조 | 실제 형태를 고르는 메커니즘, 그리고 주체 |
| 마르크스 | 생산관계라는 물질적 토대와 그 위의 상부구조 | 토대에서 관념으로 가는 기제, 그리고 계급 아닌 정체성 |
| 푸코 | 자연스러워 보이는 것의 역사적 제작 — 권력은 억압이 아니라 생산 | 규범적 발판 — 왜 지배에 저항해야 하는가 |
| 부르디외 | 자본의 전환과 재생산 — 우위가 정당한 능력으로 오인되는 과정 | 변화, 그리고 장(field)의 기원19 |
| 라캉 | 무의식이 기표의 연쇄로 구조화된다는 것 | 경험적 검증 가능성 |
| ANT | 인간과 사물을 같은 언어로 기술하기, 권력을 결과로 설명하기 | 어디서 네트워크를 끊을지, 그리고 진 쪽의 목소리 |
이 표 자체가 투영이라, 각 칸마다 버려진 것이 있다. 그런데 칸을 하나씩 펼쳐 원문과 대 보면 뜻밖의 것이 나온다. 틀리는 방식이 다섯 번 다 같다. 어느 경우에도 이론이 틀린 게 아니라, 이론에 붙어 있던 한정어가 전달 과정에서 떨어져 나갔다. 렌즈가 세계를 투영하듯 통설은 이론을 투영하고, 잔차는 언제나 한정어 쪽이다. 그러니 아래 다섯은 서로 다른 다섯 개의 정정이 아니라, 같은 동작의 다섯 박자다.
렌즈마다 떨어져 나간 한정어
하나 — 전달 경로가 지워진다. 레비스트로스가 인류학으로 옮겨 온 것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소쉬르가 아니다. 1945년의 강령적 논문에서 그가 “구조언어학의 저 유명한 창시자”라고 부르는 사람은 트루베츠코이이고, 그가 차용하는 것은 프라하 학파의 음운론이다. 작업 유비는 소쉬르의 기호가 아니라 음소이고, 전달 경로는 1942년 뉴욕에서 만난 야콥슨이다. 소쉬르는 그 논문에 한 번도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20 그리고 이 렌즈의 진짜 잔차는 흔히 말하는 ‘역사 무시’가 아니다 — 그는 통시성을 부인한 적이 없고 신화가 민족지적 맥락 없이 읽힌다고 한 적도 없다. 정확한 잔차는 생성성의 공백이다. 구조 분석은 가능한 변환의 공간을 그리지만, 실제로 실현된 것을 고르는 메커니즘이 없다. 리쾨르가 이 입장을 “초월적 주체 없는 칸트주의”라 불렀을 때 레비스트로스는 그 표현을 그대로 받았다 — “그의 정식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20 그는 자기가 무엇을 버렸는지 알고 버렸다. 잔차를 적어 둔 것이다.
둘 — 동사 하나가 지워진다. 마르크스 쪽의 잔차도 통설과 다르다. 1859년 서문의 유명한 두 문장은 독일어로 서로 다른 동사를 쓴다 —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지적 생활 과정을 bedingt하고,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bestimmt한다. 영어권의 ‘경제결정론’ 논쟁은 상당 부분 1904년 번역이 둘 다 determine으로 옮긴 데서 자랐다.21 다만 bedingt를 그냥 약한 동사로 읽는 것도 안전하지 않다. 진짜 난점은 강도가 아니라 기제다. 코헨의 기능적 재구성은 자본주의가 생산력을 발전시키기 때문에 존속한다고 설명하는데, 엘스터는 여기에 ‘객관적 목적론’이라는 혐의를 건다 — 목적을 가진 주체가 없는데 목적이 있다. SEP는 이 문제에서 경험적 기록이 “기껏해야 들쭉날쭉하다”고 적는다.21
셋 — 적용 범위가 지워진다. 푸코의 권력/지식 명제에도 통설이 지우는 한정어가 있다. SEP의 문장은 “적어도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는 권력의 목표와 지식의 목표가 분리될 수 없다”이다. 지식 일반이 아니라 인간과학 — 정신의학, 범죄학, 의학, 성과학 — 에 색인된 명제다.22 생명권력도 마찬가지다. 주권 → 규율 → 생명정치의 계승 서사는 푸코 본인이 거부했다. 그는 낡은 권리가 대체된 게 아니라 “그것을 지우지 않으면서 관통하고 스며드는 새로운 권리에 의해 보완되었다”고 했고, “법적 시대, 규율적 시대, 안전의 시대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상관관계의 체계가 바뀔 뿐이라고 못 박았다. 이 렌즈의 잔차는 규범적 발판이다. 낸시 프레이저의 비판이 정확한데, 그 정확함이 흥미롭다 — 프레이저는 푸코의 정당성 문제 괄호치기가 생산적이었다고 인정한다. 그 괄호 덕분에 근대 권력에 대한 풍부한 경험적 서술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의 문제는 괄호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규범만 유보하는지 모든 규범틀을 유보하는지가 모호한 채로 정치적으로 참여적인 서술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구조적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스스로 초대하는” 결과가 된다 — 왜 지배에 저항해야 하는가.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는 유명한 문장은 저항이 일어난다는 기술이지 저항이 정당하다는 근거가 아니다.22
넷 — 비판의 사정거리가 지워진다. 라캉의 자리에서는 통속 버전이 학술 버전보다 훨씬 거칠다는 것이 드러난다. 소칼과 브리크몽의 ‘헛소리(gibberish)’ 판정은 흔히 라캉 전체에 대한 것으로 인용되지만, 원문에서 그 단어는 컴팩트성에 대한 그의 서술 하나를 겨냥한다 — 위상수학 용어들을 “의미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도 없이 임의로 뒤섞었다”는 것. 뫼비우스 띠와 토러스에 대한 비판은 종류가 다르다. 정의를 틀렸다는 게 아니라, 그것과 정신병리 사이를 잇는 논증이 없다는 것이다(“독자는 이 위상수학적 대상들이 정신질환의 구조와 무슨 상관인지 궁금할 것이다. 음, 우리도 그렇다”). 그리고 두 사람은 스스로 범위를 못 박아 둔다 — “우리는 라캉 작업의 순수하게 정신분석적인 부분에 대한 논쟁에는 들어가지 않는다.”23 이 한정어를 떼고 인용하는 순간, 비판 자체가 이 글이 말하는 투영 오류의 사례가 된다.
다섯 — 저자 자신의 번복이 지워진다. ANT는 이 문제를 가장 자각적으로 다룬다. 라투르는 규모를 선험적으로 배정하기를 거부한다 — “거시(macro)는 미시가 마트료시카처럼 담기는 더 넓은 자리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똑같이 국소적이고 똑같이 미시적인 또 하나의 자리다.” 권력은 설명항이 아니라 피설명항이다. 존 로의 문장이 가장 직설적이다 — “나폴레옹은 좀도둑과 종류가 다르지 않고, IBM은 골뱅이 노점과 종류가 다르지 않다. 만약 그것들이 더 크다면, 우리가 연구해야 할 것은 어떻게 그렇게 되었는가다.”24 대신 이 렌즈의 잔차는 날카롭다. 휘틀과 스파이서는 ANT의 번역 개념이 “승자 쪽으로 치우친다”고 지적한다 — 네트워크에서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가 더 밀려난다. 스트래선은 네트워크에 내재적 정지 규칙이 없다고 지적한다. 어디선가 잘라야 하는데 이론이 어디서 자를지 말해 주지 않는다. 라투르 본인은 1999년에 “actor-network-theory에는 작동하지 않는 것이 네 가지 있다. actor라는 단어, network라는 단어, theory라는 단어, 그리고 하이픈! 관에 박는 네 개의 못”이라고 썼다가, 2005년 각주에서 이를 뒤집는다 — 이제 하이픈까지 포함해 전부 옹호하겠다고.24
다섯 박자가 같은 소리를 낸다. 레비스트로스는 야콥슨을, 마르크스는 동사 하나를, 푸코는 “적어도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는”을, 소칼은 자기가 그어 둔 선을, 라투르는 자기 번복을 잃었다. 저자들은 전부 한정어를 적어 두었고, 전달이 그것을 떨어뜨렸다. 이론을 오해하는 가장 흔한 방법은 반박이 아니라 요약이다.
한 대상, 네 렌즈
이제 같은 대상 하나에 네 렌즈를 대 보면 투영이 무슨 짓을 하는지 한눈에 보인다. 대상은 ①의 그 AI 데이터센터다.
| 렌즈 | 데이터센터는 무엇이 되는가 | 이 렌즈가 못 보는 것 |
|---|---|---|
| 인프라·물질 | 변전소·변압기·냉각 루프·수리권의 집합, 그리고 각자의 시간 상수 | 자본 관계, 왜 지금 이 속도인가 |
| 정치경제(마르크스) | 고정된 형태의 불변자본,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 | 살아있는 노동이 거의 없는데 잉여가치는 어디서 오는가 |
| 신호(스펜스) | 자본시장·연구자·국가를 향한 분리 신호, 자랑의 단위는 기가와트 | 신호가 가리키는 대상이 실재하는지 |
| ANT | GPU·아쿠아퍼·군의회·전력구매계약의 이질적 네트워크, 엔비디아 할당은 의무통과점 | 왜 이 배치가 저 배치보다 나쁜가 |
정치경제 렌즈의 성능이 특히 좋은 자리가 하나 있다. 마르크스의 도덕적 감가다 — 기계가 물리적으로 멀쩡한데 교환가치를 잃는 현상, 같은 기계가 더 싸게 생산되거나 더 나은 기계가 경쟁에 들어올 때 일어난다(『자본』 1권 15장). GPU는 이 두 경우를 동시에 맞는다. 엔비디아가 공언한 아키텍처 교체 주기는 1년인데 — 블랙웰 울트라 2025년 하반기, 베라 루빈 2026년 하반기, 루빈 울트라 2027년 하반기 — 운영사들은 같은 하드웨어를 5–6년에 걸쳐 상각한다.25 혁신의 시계와 회계의 시계 사이의 이 간극은 지금도 살아 있는 쟁점이다. 이 현상은 인프라 렌즈로는 안 보인다. 물리적으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로드맵 자체가 이 글의 주제를 한 번 더 실연한다. 위 연도들은 엔비디아가 문서로 밝힌 것이지만, 그다음 세대 ‘파인만 2028’은 키노트 로드맵 슬라이드에만 있고 보도자료 본문에는 연도가 없다. 엔비디아 자신은 이 날짜들을 두고 “약속이나 법적 의무가 아니며 전적으로 엔비디아의 재량”이라고 못 박는다.25 한 장의 슬라이드가 불확실한 미래를 깔끔한 연도열에 눌러 찍고, 읽는 쪽은 그 연도열을 일정표로 읽는다. 잔차 — 각 칸에 붙은 조건과 재량 — 는 슬라이드 밖에 있다.
신호 렌즈에서는 통속화가 특히 심해서 짚어 둘 값이 있다. 스펜스의 신호는 위조 불가능한 신호가 아니다. 완벽하게 위조 가능하되, 낮은 타입에게는 수지가 맞지 않을 뿐이다 — 분리균형에 필요한 것은 위조 불가능성이 아니라 타입별 비용 차이(단일교차 조건)다.26 이것을 자하비의 핸디캡 원리(“신호는 비용이 크기 때문에 정직하다”)와 뭉개면 안 되는데, 하필 그 핸디캡 원리 자체가 무너졌다. 균형에서 지불되는 신호 비용은 정직성 유지에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니”라는 것이 1990년대 이후 이론의 결론이고, 2020년의 대규모 리뷰와 2023년의 형식적 결과는 이 패러다임을 폐기하고 비용이 아니라 트레이드오프로 설명해야 한다고 결론짓는다. 경쟁사 억지(deterrence)도 이 렌즈에서 빼야 한다 — 그건 스펜스의 1977년 진입저지 모형이나 딕싯의 것이고, 사적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 완전정보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네 렌즈 전체의 메타 잔차가 있다. 넷 중 어느 것도 “그 모델들이 실제로 작동하는가”를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각각은 지출을 제약으로, 축적으로, 과시로, 결합으로 재기술할 뿐이고, 어느 것도 모델의 인식적 성능을 판정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다만 이것을 ‘반증 불가능하니 사이비’라고 부르면 그 자체가 또 하나의 투영이다. 이것들은 예측적 경험이론이 아니라 해석틀이고, 여러 결과와 양립한다는 사실 자체는 흠이 아니다. 오히려 정확히 말하면 넷 중 둘은 결과 공간을 제약한다 — ANT는 “실제로 작동한다”는 네트워크 독립적 사실이 있다는 것 자체를 부인하고, 스펜스식 신호는 지출이 타입과 상관되는지에 대해 검증 가능한 함의를 갖는다.
⑤ 잔차를 적는다 — 좋은 설명에는 압축 계약이 있다
네 자리를 겹쳐 놓으면 같은 동작이 보인다.
| 자리 | 원래 차원 | 눌러 찍은 축 | 버려진 잔차 |
|---|---|---|---|
| AI 병목 | 동시 제약의 스택 | ”지금 누구 실적에 보이는가” | 동시성 — 제약은 처음부터 함께 있었다 |
| 자니베코프 | 관성계의 , 몸체계의 , 자세 | 카메라 한 대의 화면 | 기준계 — 무엇에 대해 뒤집혔는가 |
| Knuth | 성취 벡터 | 역사상 몇 등이라는 스칼라 | 가중치 — 누가 정했는가 |
| 이론 렌즈 | 선택적 분석 도구 | 세계 전체의 단일 원인 | 그 렌즈가 보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것 |
투영 자체는 잘못이 아니다. 압축 없이는 설명도 없다. 공식도, 이 표도, 이 글도 투영이다. 잘못은 압축한 뒤에 압축했다는 사실을 지우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설명에는 계약서가 붙는다.
압축 계약 — ① 대상: 무엇을 설명하는가. ② 투영축: 어느 기준과 좌표계로 보았는가. ③ 불변량: 압축 후에도 무엇이 남는가. ④ 잔차: 무엇이 빠졌으며 어디서 이 설명이 깨지는가.
넷째 항이 핵심이다. 앞의 셋은 대개 알아서 적히지만, 잔차는 적으려고 마음먹지 않으면 적히지 않는다. 그리고 이 글에서 가장 신뢰가 갔던 사람들은 전부 넷째 항을 스스로 적은 사람들이었다. 레비스트로스는 “초월적 주체 없는 칸트주의”라는 규정을 거리낌 없이 받았다. 소칼과 브리크몽은 자기 비판의 사정거리를 명시적으로 잘라 두었다. 라투르는 자기 이론의 네 단어를 관에 박는 못이라 불렀다가 6년 뒤 하이픈까지 옹호한다고 뒤집었다. Knuth는 자기 이름이 붙은 표기법마다 다른 사람 이름을 적어 넣고, 폰 노이만이 1945년에 이미 알고리즘을 해석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자기 손으로 문서화했다. 그리고 사후에 자기 소프트웨어의 버전을 로 고정해 남은 버그를 기능으로 만들라고 유언했다.
반대로 잔차를 지우면 어떻게 되는지도 봤다. 릴레이 서사는 동시성을 지웠고, “지구가 뒤집힌다”는 기준계를 지웠고, 순위표는 가중치를 지웠고, 렌즈를 세계로 착각하는 사람은 그 렌즈가 애초에 보도록 만들어지지 않은 것들을 지웠다. 지워진 자리마다 사람들은 빈칸을 자기 직관으로 채웠다. 모순은 접혀 있다에서 접힌 자리의 가운데 항이 공짜로 채워진다고 썼는데, 투영에서는 사정이 더 나쁘다. 접힌 것은 값을 치르면 펼쳐지지만, 투영된 성분은 출력 어디에도 남지 않는다. 원본이 사라져서가 아니다 — 원본은 멀쩡히 있다. 출력이 그것을 지목하지 못할 뿐이다. 같은 한 줄로 찍히는 상태가 5차원어치 있고, 그중 어느 것이었는지 그 한 줄은 말해 주지 않는다. 그러니 잔차는 사후에 발견되는 게 아니라, 투영하는 그 순간에 적어 두는 수밖에 없다.
문제는 풀리지 않는다, 옮겨질 뿐의 번역이 늘 되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푸리에에는 역변환이 있지만 SHA-256에는 없다 — 그 글의 표현으로 “해시는 불변량의 극단”이고, “입력의 거의 모든 것을 버리고” 딱 한 가지만 묻는다. 그러니 좋은 압축과 나쁜 압축을 가르는 선은 가역성이 아니다. 해시는 거의 전부를 버리면서도 정직하다. 무엇을 남기는지가 이름에 적혀 있기 때문이다 — 지문은 지문이라고 불리고, 아무도 지문에서 얼굴이 복원되리라 기대하지 않는다. 반면 에서 로 가는 는 5차원을 버려 놓고 “Knuth는 몇 등”이라는 얼굴로 돌아온다. 둘 다 다대일이고 둘 다 비가역인데, 하나는 계약서를 들고 있고 하나는 없다. 차이는 무엇을 버렸는가가 아니라 버렸다고 적었는가다.
그리고 이 차이는 확인 비용의 부등식이 왜 그렇게 질긴지도 설명해 준다. 투영된 주장을 만드는 비용은 거의 0이다. “Knuth는 폰 노이만급은 아니다”, “지구가 뒤집힐 수 있다”, “이번엔 전력이 병목이다” — 전부 한 줄이다. 그 한 줄의 잔차를 복원하는 비용은, 버린 차원을 처음부터 다시 재구성하는 값이다. 이 글 한 편을 위해 확인해야 했던 것이 그 값이다 — 4월 20일과 5월 24일 사이의 34일, 78만 년과 77만 3천 년 사이의 7천 년, 국립과학원 11분과와 34분과 사이의 거리.
한 줄로
한 줄로 줄이는 일은 접기처럼 느껴진다. 접힌 것은 언제든 펼 수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하는 일은 대개 투영이고, 투영은 값을 더 치른다고 펼쳐지지 않는다. 접었다고 믿으면서 실은 골라 버리는 것 — 그것이 이 글이 따라온 네 자리의 공통 동작이다.
제약은 줄을 서지 않았고, 각운동량은 뒤집히지 않았고, Knuth에게는 등수가 없고, 이론은 세계가 아니다. 그러나 어느 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릴레이 서사는 가격이 도착한 순서로는 정확했고, 나사는 실제로 뒤집혔고, 순위표는 어떤 아래서는 참이고, 렌즈는 자기가 보도록 만들어진 것을 정확히 보여 준다. 전부 그림자로서는 정직하다. 문제는 그림자가 자기가 그림자라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뿐이다.
설명은 투영이다. 그리고 사라진 차원은 그림자를 아무리 노려봐도 돌아오지 않는다 — 어느 빛으로 어느 벽에 찍었는지 옆에 적어 둔 사람만이, 나중에 그 차원을 다시 세울 수 있다.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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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저자의 “이 며칠 사이에 고객 전화를 받았다”는 발언은 TSMC 2023년 1분기 실적발표(4월 20일) 질의응답이다. 2분기 콜(7월 20일)에서 그는 “전공정은 지원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후공정, 고급 패키징 쪽, 특히 CoWoS는 고객이 필요로 하는 것의 100%를 채우기 매우 어려울 만큼 capacity가 빡빡하다”고 말하고 완화 시점을 “내년 말쯤”으로 잡았으며, 같은 콜에서 서버 AI 프로세서 수요를 전체 매출의 “약 6%“로 규정하고 2024년 CoWoS capacity를 약 2배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회사는 그 콜에서 2023년 연간 달러 매출 전망을 약 10% 감소로 낮췄다(실제 −8.7%). 흔한 오해 하나 — CoWoS를 “처음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은 7월이 아니라 이미 4월이다. TSMC Investor Relations ↩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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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5월 24일 장 마감 후 발표된 엔비디아 FY2024 1분기 실적은 매출 71.9억 달러, 데이터센터 매출 42.8억 달러였고 2분기 가이던스로 “110억 달러 ± 2%“를 제시했다 — 당시 컨센서스 약 71.5억 달러의 1.5배가 넘는다. 다음 날 주가는 +24.37%($305.38 → $379.80, 액면분할 전) 마감했고 시총은 약 1,840억 달러 늘었다(사상 최대 일간 증가는 아니다). FY2024 연간 데이터센터 매출 475억 달러(+217%), 4분기 184억 달러(+409%). 덧붙이면 이 409%의 기준인 FY2023 4분기(36.2억 달러)는 바닥이 아니었다 — 당시 공시는 그 분기를 “전년 대비 +11%“로 적었다. Q1 FY2024 · Q4 FY2024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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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는 2022년 6월 8일 HBM3 양산 개시를 발표했다 — 2021년 10월 업계 최초 개발 후 “단 7개월 만”이다. FY2023 실적(2024년 1월 24일)은 매출 32.77조 원, 영업손실 7.73조 원(−24% 마진), 순손실 9.14조 원이었고, 4분기에 영업이익 3,460억 원으로 5개 분기 만에 흑자 전환했으나 그 분기도 순손실 1.38조 원이었다. 같은 자료의 표현은 “주력 제품인 DDR5와 HBM3 매출이 전년 대비 각각 4배, 5배 이상 증가”다. 회사는 2023년에 HBM 매출 절대액을 공시하지 않았고 ‘비중’조차 2024년(3분기 D램 매출의 30%)에야 처음 공개했으므로, 2023년의 달러 표시 HBM 매출은 전부 애널리스트 추정치다. SK hynix Newsroom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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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어를 정확히 해 둔다. 선형대수에서 투영은 정의역과 공역이 같은 멱등 사상이다 — , . 이 글의 처럼 공역이 더 작으면 은 정의조차 되지 않으니 이 뜻의 투영은 아니다. 그러나 두 뜻은 갈라져 있지 않다. 멱등 사상 는 상 위로의 전사 와 단사 로 분해되고(, ), 역도 성립한다 — 가 오른쪽 역원(단면) 를 가지면 가 멱등이 된다. 즉 를 투영이라 부르려면 복원 규칙 를 하나 골라야 한다. 전사 선형사상에는 단면이 항상 있으므로(의 여공간을 아무거나 택하면 된다) 는 이 뜻에서 투영이 맞다 — 이면 정확히 의 위 스칼라 투영(resolute)이다. 곱집합의 좌표투영 , 몫사상, 다발사영도 모두 표준 용법이다. 대신 두 가지를 바로잡아 둔다. ① 버려지는 것은 벡터 하나가 아니라 올(fiber) — 같은 값으로 찍히는 상태들의 집합 — 이다. 선형사상이면 올은 의 잉여류이고, 에서는 , 곧 5차원 초평면이다(계수-퇴화차수 정리: ). ② 잔차 는 복원 규칙 를 고른 뒤에야 정의된다. 이 단어의 고향인 최소제곱이 그렇다 — 잔차 가 뜻을 갖는 것은 모자행렬 가 대칭이고 멱등이기 때문이다. 이 글의 ‘잔차’는 은유가 아니라 빌린 말이고, 빌린 조건이 바로 그 멱등성이다. 가장 건조하게 옮기면 이 글이 말하는 것은 비단사성이고 그 결과는 통계학이 말하는 식별불가능성이다 — 가 단사일 때 모수가 식별가능하다는 그 뜻 그대로다. 통계역학의 거친낟알내기도 같은 구조다(거시상태란 경험적으로 구별되지 않는 미시상태들의 동치류다). 그럼에도 ‘투영’을 쓰는 이유는 이 말이 그림자를 데려오기 때문이다 — 교과서가 투영의 첫 예로 드는 것이 종이 위에 지는 그림자다. 다만 그림자 비유가 흘리는 것이 하나 있다. 버린 성분은 없어지지 않는다. 출력이 그것을 결정하지 못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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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위를 맞춘 형태 에서 의 단위는 [자원 ]/[처리량]이므로 는 처리량 단위가 되고, 그제야 이 차원적으로 동차가 된다. 이 고정비율 기술이 레온티에프 생산함수이고(대체탄력성 0, L자 등량곡선, CES의 극한), 전산학 판본이 루프라인 모델이다: Williams, Waterman & Patterson, “Roofline: An Insightful Visual Performance Model for Multicore Architectures,” Communications of the ACM 52(4), 2009, 65–76, doi:10.1145/1498765.1498785. 루프라인이 로 쓰이는 것이 정확히 이 정규화다 — 바이트/초에 FLOP/바이트를 곱해 FLOP/초로 맞춘다. 선조로는 리비히의 최소량의 법칙(슈프렝겔 1840)과 골드랫의 제약이론(The Goal, 1984)이 있다. 그림자가격에 대해: 는 선형계획 s.t. 의 값이고, 값함수 는 오목이며 조각별 선형이다. 선형계획에서 강쌍대성은 자동으로 성립하므로(원문제가 실행가능하고 유계이면 제약자격이 따로 필요 없다) 의 성립 조건은 사실상 의 미분가능성 하나이고, 이는 최적 쌍대해가 유일할 때 — 곧 병목이 하나로 뚜렷하게 묶일 때 — 성립한다. 두 자원이 동시에 묶이면 에 꺾임이 생겨 편미분이 존재하지 않고, 쌍대 최적해는 하나가 아니라 집합이 된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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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압기 리드타임은 미국 대통령 직속 국가인프라자문위원회(NIAC) 2024년 6월 보고서가 인용한 Wood Mackenzie 자료 기준 2021년 약 50주에서 2024년 평균 120주, 대형 변압기는 80–210주이며 가격은 팬데믹 이전 대비 약 80% 높다. 같은 보고서는 발주 후 “2020년만 해도 몇 달이던 것이 이제 2~4년”이라 적었고, 미국의 한 대형 변압기 공장은 신규 주문에 5년 대기를 통보했다. 계통접속 대기열은 LBNL Queued Up 2024년판 기준 2024년 말 약 2,290GW로 기존 미국 발전설비 총량(약 1,320GW)의 두 배에 가깝다 — 다만 이 대기열은 송전접속을 구하는 발전·저장 설비를 재는 것이지 데이터센터 부하가 아니다. 2023년 준공 프로젝트의 접속신청→상업운전 소요는 약 5년(2015년 3년, 2008년 2년 미만)이고, 2000–2018년 신청분 중 2023년 말까지 상업운전에 도달한 비율은 약 19%다. 비스트라는 2024년 6월 1일 기준 S&P500 12개월 수익률 1위(+300% 이상)였다. 곽노정 SK하이닉스 CEO의 “올해 HBM은 이미 완판, 2025년도 거의 완판”은 2024년 5월 2일 이천 기자간담회 발언이다. NIAC 보고서 · LBNL, Queued Up ↩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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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EA는 2024년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소비를 약 415TWh(세계 전력소비의 약 1.5%)로 추정하고, 기준 시나리오에서 2030년 약 945TWh(3% 미만)로 본다 — 연 약 15% 성장으로 다른 모든 부문 합계 성장률의 네 배가 넘는다. 기준 시나리오는 네 개 중 하나이고 2030년 전망치는 670TWh(역풍)에서 1,260TWh 초과(도약)까지 벌어진다. 미국과 중국이 증가분의 약 80%를 차지한다. IEA, Energy and AI (2025년 4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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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즈 T-13은 1985년 6월 6일 사령관 블라디미르 자니베코프와 비행엔지니어 빅토르 사비니흐를 태우고 발사되어, 전력이 끊겨 죽은 살류트 7호에 도킹해 되살렸다 — 우주 역사상 손꼽히는 현장 수리다. 자니베코프는 약 110일간 체류했다. 나사 일화는 대중과학 글이 출처 없이 반복한다는 의심을 받아 왔으나, В. Петров & А. Володин, Доклады физики(2013)가 1985년의 관측 — 너트, 180도 축 반전, 그리고 “이 뒤집힘이 동일한 시간 간격으로 반복되었다”는 사실 — 을 기록하고 있다. 반면 “지구가 뒤집힐까 봐 10년간 기밀이었다”는 이야기는 러시아 타블로이드와 음모론 블로그(oko-planet.su 2009, pravda-tv.ru, versia.ru) 및 선정적 TV 프로그램으로 출처가 수렴하며, 영어·러시아어 어느 쪽에서도 학술·문서고 근거가 없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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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력 없는 강체의 오일러 방정식은 몸체 고정 주축계에서 와 그 순환 치환이다. 규약을 명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 이것 없이는 ‘최대’와 ‘최소’가 무의미하다. 중간축 둘레()로 선형화하면 로 괄호가 양수, 최대·최소축 둘레로는 음수가 되어 진동한다. 보존량은 둘이다 — 회전운동에너지 와 각운동량 크기의 제곱 . 몸체계의 공간에서 앞은 타원체, 뒤는 구이므로 궤적은 두 면의 교선이고, 분리선은 이다(푸앵소 구성: 관성타원체가 불변평면 위를 미끄럼 없이 구르며 끝점이 타원체에 그리는 곡선이 폴호드, 불변평면에 그리는 곡선이 헤르폴호드). 이 현상은 현대의 발견이 아니라 오일러 방정식(18세기)의 직접적 귀결이며, 푸앵소가 1834년 5월 19일 파리 과학아카데미에서 읽은 「회전체의 새로운 이론」이 기하학적으로 선명하게 만들었다. 현대적 정리는 L. Van Damme, P. Mardešić & D. Sugny, “The tennis racket effect in a three-dimensional rigid body,” Physica D 338 (2017) 17–25 (arXiv:1606.08237) 및 P. Mardešić 외, “Geometric Origin of the Tennis Racket Effect,” Physical Review Letters 125, 064301 (2020), doi:10.1103/PhysRevLett.125.064301.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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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주관성모멘트는 이고 가 극축(최대)이다. 규격화 값은 , 이고, 적도면 비대칭은 로 극히 작다. 역학적 편평률은 IAU 2006 세차 모형이 을 채택한다() — 는 지오포텐셜에서 직접 읽는 값이 아니라 관측된 세차상수에서 유도된다. 소산 논변은 이렇다 — 외력 없는 물체에서 은 보존되지만 운동에너지는 보존되지 않고, 주축 회전에서 이므로 최대관성축 회전이 주어진 에서 에너지 최소, 최소관성축 회전이 최대다. 따라서 소산은 오일러의 강체 방정식이 최대·최소축에 부여한 대칭을 깨고 ‘세차 완화’가 장기적으로 자니베코프 효과를 없앤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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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질조사국(USGS)에 따르면 지구 자기장은 외핵에서 생성되며, 외핵은 “방사성 가열과 화학적 분화의 결과로 난류 대류 상태”에 있다 —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발전기와 비슷한” 과정이다. 역전하는 것은 자기장의 극성이고 고체 지구는 재배향되지 않으며 자전축도 그대로다. 마지막 완전 역전인 브뤼느–마쓰야마 역전은 약 77만 3천 년 전이다. USGS FAQ를 비롯해 널리 인용되는 “약 78만 년”은 해양 퇴적물 천문연대에서 유도된 옛 값으로, 퇴적 후 잔류자화(PDRM)의 고정 깊이 때문에 경계가 더 깊은 곳에 기록되어 오래된 쪽으로 치우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전은 순간적이지 않아 수백~수천 년이 걸리며(최근 네 차례를 가장 잘 제약한 Clement, Nature 2004의 평균은 약 7,000년), 주기성이 없어 “1만 년마다 오기도 하고 5천만 년 넘게 안 오기도” 한다. USGS, Geomagnetis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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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ACM 튜링상 공식 인용문은 “알고리즘 해석과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에 대한 그의 주요 기여, 특히 『The Art of Computer Programming』이라는 제목의 연속 저작을 통해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예술’에 기여한 데 대하여”이다 — 창건 주장은 없다. Knuth는 1938년 1월 10일 밀워키 출생, 케이스 공대 수학 학사(1960, 교수진 표결로 석사 동시 수여), 칼텍 수학 박사(1963). 학위논문은 「Finite Semifields and Projective Planes」, 지도교수 마셜 홀 주니어 — 반체(semifield)는 곱셈의 결합법칙을 제외한 나눗셈환 공리를 만족하는 대수 구조다. TAOCP는 1962년 1월 애디슨웨슬리가 컴파일러 작성법 책을 의뢰하면서 시작됐고 Knuth는 그날 12개 장의 제목을 스케치했다. 1965년 6월 초고가 손글씨 약 3,000쪽에 이르자 12개 장을 일곱 권으로 재포장하기로 하고 1966년 발표했다. 현재 1권(3판 1997), 2권(3판 1997), 3권(2판 1998), 4A(2011), 4B(2022년 9월 출간, 판권 표기 2023), 4C는 작업 중이다. ACM A.M. Turing Award · Knuth’s TAOCP page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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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th의 RSK 기여는 “Permutations, matrices, and generalized Young tableaux,” Pacific Journal of Mathematics 34(3), 1970, 709–727이다. 대응 자체는 로빈슨(1938)과 셴스테드(1961)의 것이고 반표준 타블로의 도입도 그의 것이 아니다 — 셴스테드가 1961년에 이미 반복 원소를 가진 수열로 확장했고, Knuth 본인이 “이 특수한 경우에는 내 구성이 셴스테드의 것과 동일하다”고 적는다(p. 711). 그가 더한 것은 단어에서 임의의 음이 아닌 정수 행렬로의 이행, 행렬을 전치하면 와 가 맞바뀐다는 정리, 그리고 주어진 를 공유하는 모든 단어를 특징짓는 ‘커누스 관계’다. 초현실수는 그의 수학 소설 Surreal Numbers(1974; 1973년 오슬로에서 일주일 만에 집필)에서 명명됐다 — 콘웨이 자신의 서술(On Numbers and Games, 1976)보다 2년 앞선다. 콘웨이는 초판에서 “이 클래스의 일반성 때문에 우리는 그 원소들을 제한하는 형용사 없이 단순히 수라고 부르겠다”고 썼고, 2001년 재판 서문에 가서야 “이 이름을 지어 준 Knuth에게 매우 감사한다… ‘초현실수’가 훨씬 낫다”고 인정했다. Knuth–Bendix 완성 알고리즘은 Knuth & Bendix, “Simple Word Problems in Universal Algebras”(1970), 위쪽 화살표 표기는 “Mathematics and Computer Science: Coping with Finiteness,” Science 194(4271), 1976.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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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 Knuth, “Big Omicron and Big Omega and Big Theta,” SIGACT News 8(2), 1976, 18–24, doi:10.1145/1008328.1008329. 그는 이 논문에서 란다우의 언급을 인용해 자신이 아는 의 첫 등장이 바흐만의 1894년 책(p. 401)이며 표기는 란다우 본인이 만들었다고 적는다. 그의 실제 기여는 하디–리틀우드가 1914년 논문에서 의 부정 — “무한히 많은 에 대해 을 초과” — 으로 도입한 를 “충분히 큰 모든 “을 요구하는 쪽으로 다시 정의한 것이고, 그는 이 강화가 전산학에는 “훨씬 적절하다”고 썼다. 에 대해서는 “밥 타잔과 마이크 패터슨이 각각 독립적으로 내게 제안했다”고, 집합 기반 정의는 론 리베스트의 것이라고 밝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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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립과학원에서 Knuth의 소속은 Class III(공학·응용과학) Section 34(전산정보과학)이며 Class I의 Section 11(수학)이 아니다. 프랑스 과학아카데미 외국인 회원(1992년 3월 30일 선출) 자격도 ‘기계·정보과학’ 분과이지 ‘수학’ 분과가 아니다. 두 곳 모두 일반 과학아카데미이므로 ‘수학 단체가 준 영예’로 세어서는 안 된다. 수학 단체의 영예는 AMS 스틸상(1986, 해설 부문), AMS 깁스 강연(1978), MAA 포드상(1975, 1993), AMS 창립 펠로(2013), 런던수학회 명예회원(2015)이다. 스틸상 인용문은 TAOCP가 “최근 수십 년간 수학 자체의 어떤 책 못지않게 이 세대 학생들의 수학 교육에 기여했다”고 적었다. 국가과학훈장은 1979년 수여(1980년 1월 14일 카터 대통령 전달), 인용문은 “효율적인 컴퓨터 알고리즘의 수학적 해석과 설계에 대한 그의 중요한 연구, 그리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핵심 지식을 성문화한 지대한 영향력의 저서들에 대하여”이다. 그의 에르되시 수는 1이 아니라 2다 — 그는 에르되시와 공저한 적이 없다. 다만 얀손·우치아크·피텔과 함께 쓴 “The Birth of the Giant Component,” Random Structures & Algorithms 4 (1993), 233–358은 무작위 그래프의 상전이를 다룬 본격 확률조합론이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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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nuth는 1967년 가을 산타바버라의 학회에서 전공을 묻는 질문에 답할 이름이 없다는 걸 깨닫고 ‘analysis of algorithms’라는 말을 만들었다고 회고하며, 1970년 니스 세계수학자대회 E분과(응용수학) 초청 강연으로 이를 밀어붙였다. 그는 2011년 BCS 인터뷰에서 “내가 발전시킨 가장 큰 것은 알고리즘이 얼마나 좋은지 알아내기 위해 알고리즘을 비교하는 수학적 접근… 학문 분야를 만든 것, 그게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ACM 튜링상 사이트의 전기(데이비드 월든 집필)조차 창건 주장을 조건부로만 지지한다 — “논쟁의 여지는 있지만(Arguably), 그 책들은 알고리즘 해석을 그 자체로 하나의 전산학 주제로 확립했다.” 한편 하트마니스와 스턴스는 “On the Computational Complexity of Algorithms,” Transactions of the AMS 117 (1965), 285–306(1963년 집필)으로 계산복잡도를 독립적으로 창건했고, 이 논문은 순수수학 저널에 실렸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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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E. Knuth, “Von Neumann’s First Computer Program,” ACM Computing Surveys 2(4), 1970년 12월, 247–260. Knuth의 초록은 이 1945년 손글씨 23쪽 원고를 저장프로그램 컴퓨터를 위한 “현존하는 가장 이른 프로그램”이라 부른다. 엄밀히는 남아 있는 것이 병합정렬 전체가 아니라 그 일부인 병합(meshing) 루틴이다 — Knuth 본인이 폰 노이만은 “이 문서에서 정렬 루틴 전체를 코딩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으며 병합 과정만 기술된다”고 적는다. 중요한 것은 폰 노이만이 이미 코딩이 아니라 알고리즘 해석을 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 그는 명령어 집합이 “복잡한 과정의 논리적 제어 수단으로 만족스러운지” 시험하려고 정렬을 골랐고, 메모를 “그것들이 얼마나 많은 제어 용량을 묶어 두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요구하는지 보려는” 시도로 규정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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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의 발단은 흔히 알려진 것과 인과가 뒤집혀 있다. Knuth는 “The Errors of TeX”(Software—Practice and Experience 19(7), 1989, 607–685)에서 “TeX의 기원은 아마도 1977년 2월 1일, 내가 고해상도 조판기의 출력을 처음 우연히 보게 된 날일 것”이라 적는다 — “디지털 활자와 ‘진짜’ 활자의 차이를 알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인쇄의 핵심적 측면이 비트 조작으로 환원되었음을 깨달았다.” 2월 13일까지 그는 안식년을 남미에서 보내려던 계획을 접고 스탠퍼드에 남아 디지털 타이포그래피를 하기로 결정한다. TAOCP 2권 2판의 형편없는 교정쇄가 도착한 것은 그 뒤인 3월 30일이다 — 즉 그 교정쇄는 동기가 아니라 마지막 밀어붙임이었고 결심은 6주 앞서 있었다. TeX 버전 번호는 3.0(1990년 3월) 이후 갱신마다 자릿수를 하나씩 붙여 로 수렴하며 현재 3.141592653(2021년 2월 5일), METAFONT는 로 수렴해 2.71828182다. 오류 포상금 $2.56은 ‘16진 1달러’다(0x$1.00 = 256센트). 프로그램 버그 포상은 매년 두 배로 올라 0x$80.00($327.68)에서 동결됐다. 다만 그 유명한 수표는 이제 역사적 유물이다 — 2008년 10월 수표 사기로 계좌 세 개를 닫은 뒤 그는 가상의 산세리페 은행(Bank of San Serriffe) 예금증서를 발행한다(“이제부터는 에스쿠도가 아니라 명예다”). 2006년 초부터 보낸 첫 275장의 수표 중 현금화된 것은 9장뿐이었다 — “나머지는 캐시(cache)된 모양이다.” Knuth’s Recent News (20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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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투스는 “지속적이고 전이 가능한 성향의 체계, 구조화하는 구조로 기능하도록 예정된 구조화된 구조”이며, 규칙에 대한 복종의 산물이 아니면서도 객관적으로 규칙적이고 “지휘자의 지휘 행위 없이도 집합적으로 연주되는” 실천의 생성 원리다(Outline of a Theory of Practice, 나이스 영역, 1977, p. 72). 이는 초기 저작의 중심 개념이고, 성숙기 틀에서는 관계적 체계의 한 항이다 — [(아비투스)(자본)] + 장 = 실천(Distinction, p. 101). 상징자본은 경제·문화·사회자본과 나란한 네 번째 종이 아니라, 셋 중 무엇이든 “오인과 인정의 관계 속에서 상징적으로 파악될 때” 들어가는 2차적 상태다 — 우위가 더 이상 우위로 보이지 않고 정당한 능력으로 보이는 상태. 결정론 비판은 Richard Jenkins, “Pierre Bourdieu and the Reproduction of Determinism”(Sociology 16(2), 1982) — “객관적 구조가 문화를 낳고, 문화가 실천을 결정하고, 실천이 그 객관적 구조를 재생산한다”는 순환. 앤서니 킹(Sociological Theory 18(3), 2000)의 논점은 단순한 결정론 혐의가 아니라 아비투스가 부르디외 자신의 실천 이론과 양립 불가능하며 “빠르게 객관주의로 후퇴한다”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부르디외 자신의 탈출구는 히스테레시스 — 장의 조건이 바뀌었는데 아비투스가 뒤처지는 것 — 인데, 이는 실제 기제이긴 하나 변화를 모델이 생성하는 것이 아니라 모델의 오작동으로 설명한다는 점에서 논점을 일부 인정하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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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논문 “Structural Analysis in Linguistics and in Anthropology”(Word 1, 33–53; Structural Anthropology(1963) 2장으로 재수록)에서 레비스트로스가 “구조언어학의 저 유명한 창시자”로 지목하는 사람은 트루베츠코이이고, 그가 채택하는 것은 트루베츠코이가 요약한 구조적 방법의 네 조작이다 — 의식적 현상에서 무의식적 하부구조로 이동할 것, “독립적 실체로서의 항”이 아니라 “항들 사이의 관계”를 분석의 기초로 삼을 것, 체계 개념을 도입할 것, 일반 법칙을 찾을 것. 이 논문 본문에 소쉬르는 한 번도 나오지 않으며 ‘langue’, ‘parole’도 없다. 반면 트루베츠코이는 5회, phoneme/phonemic은 18회, 야콥슨은 2회 나온다(그는 1942년 뉴욕에서 야콥슨을 만났다). 프라하 음운론이 소쉬르의 가치(valeur) 이론의 후손인 것은 맞지만, 직접 차용을 주장하면 전문가가 곧바로 지적할 대목이다 — 레비스트로스는 기호의 자의성 등에서 소쉬르와 갈라지고, ‘구조주의’라는 용어 자체가 『일반언어학 강의』가 아니라 프라하 학파에서 나왔다. 리쾨르의 “초월적 주체 없는 칸트주의”와 레비스트로스의 수용(“그의 정식을 받아들이는 데 아무 거리낌이 없다”)은 둘 다 「야생의 사고를 둘러싸고」(Esprit 322호, 1963년 11월)에 있다. “인간과학의 궁극적 목표는 인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해체하는 것”은 『야생의 사고』 9장 「역사와 변증법」(1962)의 문장이며, 그는 이를 “내 주장에 의도적으로 가한 거친 표현”이라 부르며 곧바로 단서를 단다 — ‘해체’는 구성 요소의 파괴를 함의하지 않으며, “과학적 설명은 복잡한 것에서 단순한 것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덜 이해 가능한 복잡성을 더 이해 가능한 복잡성으로 대체하는 데 있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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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9년 「정치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의 두 문장은 인접해 있으면서 서로 다른 동사를 쓴다 — 생산양식이 사회적·정치적·지적 생활 과정을 bedingt하고,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bestimmt한다. 표준 Progress 번역은 이를 conditions/determines로 구별하고 SEP도 “determines, or at least ‘conditions‘“라 적는 반면, 1904년 스톤 번역은 둘 다 determine으로 옮겼다 — 영어권 ‘경제결정론’ 논쟁이 자란 자리다. 다만 bedingt를 그냥 약한 동사로 읽는 것도 위험하다. 그림 사전은 마르크스 시대에 bestimmen을 bedingen의 동의어로 싣고 있고, 굴드너는 bedingt가 Ding(사물)에 뿌리를 두어 “유인이라기보다 구속”이라는 강한 힘을 지녔으며 마르크스의 의도는 결정론의 완화가 아니라 헤겔식 ‘표현적’ 인과의 회피였다고 본다. 게다가 두 문장은 주어도 목적어도 다르므로 동사 대비가 단일 관계의 두 강도를 재는 것이 아니다. 마르크스 본인은 이 대목을 “내가 도달했고 일단 도달한 뒤로는 내 연구의 길잡이가 된 일반적 결론”으로 소개한다 — 정전이 된 것은 수용사의 사실이지 그 자신의 순위가 아니다(이 서문 약 2,000단어에 ‘투쟁’이라는 말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코헨의 기능적 재구성에 대한 엘스터의 ‘객관적 목적론’ 혐의는 Jon Elster, “Marxism, Functionalism and Game Theory,” Theory and Society 11(4), 1982, 453–482 및 Making Sense of Marx(1985), 27–35에 있다. SEP가 “기껏해야 들쭉날쭉하다”고 적은 것은 발전 명제가 아니라 기능적 설명/족쇄 주장의 경험적 기록에 대해서다. SEP, ‘Karl Marx’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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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P의 문장은 “푸코의 요점은 오히려 적어도 인간에 대한 연구에서는 권력의 목표와 지식의 목표가 분리될 수 없다는 것”으로, 지식 일반이 아니라 인간과학에 색인되어 있다. “앎에서 우리는 통제하고 통제에서 우리는 안다”는 거팅과 옥살라의 해설이지 푸코의 표현이 아니다 — 『감시와 처벌』에서 그 자신의 정식은 “권력과 지식은 서로를 직접 함축한다”는 상호 함축이지 동일성이 아니다. 주권의 “죽게 하고 살게 내버려 두는 권리”와 생명정치의 “살게 하고 죽게 내버려 두는 권리”의 대비는 1976년 3월 17일 강의(『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메이시 영역 240–41)에 있으나, 푸코는 대체 독해를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 낡은 권리는 “그것을 지우지 않으면서 관통하고 스며드는 새로운 권리에 의해 보완되었다.” 『안전, 영토, 인구』 1978년 1월 11일 강의(p. 8)에서 그는 “법적 시대, 규율적 시대, 그리고 안전의 시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 구축물의 연쇄”가 있을 뿐이라고 못 박는다. 낸시 프레이저, “Foucault on Modern Power”(Praxis International 1(3), 1981, 272–87)는 푸코가 “근대 권력의 독특한 양상들이 출현하는 초기 단계에 대한 풍부한 경험적 설명”을 해냈다고 평가하며 “푸코의 정당성 문제틀 유보는 의문의 여지 없이 생산적이었다”고 적는다. 그의 반론은 푸코가 자유주의적 규범만 유보하는지 모든 규범틀을 유보하는지 모호한 채로 정치적 참여와 규범적 중립성을 동시에 표방해 “구조적으로 답할 수 없는 질문을 사실상 초대하는” 데 있다. 덧붙이면 “푸코가 경제를 담론으로 해소했다”는 납작한 판본은 『생명정치의 탄생』(1978–79 강의)이 반박한다 — 질서자유주의와 시카고학파에 대한 긴 검토이고 게리 베커의 인적자본론까지 정독한다. 그리고 그는 구조주의자였던 적이 없다 — 『말과 사물』 영어판 서문에서 자신은 “구조 분석을 특징짓는 방법도 개념도 핵심 용어도 사용하지 않았다”고 썼다. SEP, ‘Michel Foucault’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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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의식은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의 언어는 un langage(어떤 자연어에도 특수하지 않은 통사·의미 구조)이지 une langue(주어진 자연어)가 아니다 — 프랑스어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통사적 패턴화에 대한 주장이다. 이 정식은 1950년대의 구조주의적 ‘프로이트로의 복귀’에 중심적이며 그의 전 저작에 균일하지 않다 — 그는 사망까지 “무의식은 구조화되어 있다”만 일관되게 유지하고, 후기에는 lalangue를 경유해 ‘comme un langage’ 부분을 변경한다. 소칼과 브리크몽(Impostures intellectuelles, 1997) 첫 장이 라캉을 다루는데, ‘헛소리(gibberish)’ 판정은 컴팩트성에 대한 그의 서술을 겨냥한 것이다 — 라캉이 “컴팩트성의 수학 이론에서 핵심 용어를 꽤 여럿 가져다 쓰지만” “그 의미에 대한 최소한의 고려도 없이 임의로 뒤섞어서” 그의 “‘정의’는 단지 틀린 것이 아니라 헛소리”라는 것. 위상수학적 도형에 대한 반론은 종류가 다르다 — 뫼비우스 띠·토러스 대목에 대해 그들은 “아마 독자는 이 서로 다른 위상수학적 대상들이 정신질환의 구조와 무슨 상관인지 궁금할 것이다. 음, 우리도 그렇다”고 쓰고, 토러스가 “정확히 신경증의 구조”라는 단언에는 “그는 아무 논증도 제시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결정적으로 그들은 사정거리를 스스로 못 박는다 — “우리는 여기서 라캉 작업의 순수하게 정신분석적인 부분에 관한 논쟁에는 들어가지 않는다.” 보로메오 매듭은 아예 분석하지 않는다. 덧붙이면 SEP의 라캉 항목(에이드리언 존스턴)에는 소칼·포퍼·반증가능성이 아예 언급되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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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런의 생브리외 만 가리비 연구(“Some Elements of a Sociology of Translation,” The Sociological Review 32, 1984, 196–233)는 세 원칙에서 출발한다 — 불가지론, 일반화된 대칭, 자유로운 결합. 다만 이 논문은 이를 ANT의 창건이 아니라 ‘번역의 사회학’의 출발점으로 제시하며, ‘행위자-네트워크’라는 말은 캘런의 다른 1986년 논문에서, ‘ANT’라는 약칭은 존 로(1992)에서 굳었다. 번역의 네 계기에서 관심끌기는 시도이고 등록은 그것이 성공했을 때의 성취다 — 캘런 자신의 사례에서 가리비의 관심끌기는 실패하고, 유생은 “수집기에 들어가기를 거부”하며 “가리비는 반체제자가 되고”, 문제화는 “결국 논박된다.” 라투르의 규모 거부는 Reassembling the Social(2005), p. 176 — “거시는 미시가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담기는 더 넓거나 더 큰 자리를 가리키지 않는다. 그것은 똑같이 국소적이고 똑같이 미시적인 또 하나의 자리다.” 권력을 설명항으로 쓰는 데 대한 경고는 같은 책 p. 63, p. 85. 존 로의 문장은 “Notes on the Theory of the Actor Network”(Systems Practice 5(4), 1992) — ANT는 “온통 권력에 관한 것이다. 원인으로서의 권력이 아니라 (은폐되거나 잘못 재현된) 결과로서의 권력.” 덧붙이면 ‘평평한 존재론’은 라투르의 용어가 아니라 마누엘 데란다(2002)의 것이다(라투르는 “사회적인 것을 평평하게 유지하라”고 쓴다). 비판으로는 Andrea Whittle & André Spicer, “Is Actor Network Theory Critique?”(Organization Studies 29(4), 2008, 611–629) — ANT의 “번역에 대한 초점은 ‘승자’ 쪽으로 치우치는 편향을 낳으며, 이는 네트워크에서 배제된 이들의 목소리를 더욱 주변화한다” — 및 Marilyn Strathern, “Cutting the Network”(JRAI 2(3), 1996, 517–535) — 네트워크의 무한정함이 끝없는 추적을 부르므로 분석자는 어딘가에서 잘라야 하는데 이론이 기준을 주지 않는다. 라투르의 자기비판은 “On recalling ANT”(1999) — “작동하지 않는 것이 네 가지 있다. actor라는 단어, network라는 단어, theory라는 단어, 그리고 하이픈! 관에 박는 네 개의 못.” 그는 Reassembling the Social(2005) 서론 각주 9에서 “여기서 나는 「On Recalling ANT」에서 취한 것과 정확히 반대 입장을 취하는 데 대해 사과한다”며 하이픈까지 포함해 전부 옹호한다고 뒤집는다.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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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감가(moral depreciation)‘는 마르크스의 용어로 『자본』 1권 15장 3절 B에 있다 — 기계가 물리적으로 멀쩡한데 교환가치를 잃는 현상이며, 원인은 둘이다. 같은 기계가 더 싸게 생산되거나, 더 나은 기계가 경쟁에 들어오거나. GPU는 두 경우를 동시에 맞는다. 로드맵 연도는 출처의 강도가 서로 다르므로 나눠 적어 둔다. 엔비디아 산문에 명시된 것: 블랙웰 울트라는 “올해 하반기에 시스템으로 출시”(GTC 2025 블로그), 베라 루빈은 “파트너를 통해 2026년 하반기부터 공급”(CES 2026, GTC 2026), 루빈 울트라는 “2027년 하반기 예정”(GTC 2025). 슬라이드에만 있는 것: ‘파인만 2028’ — 젠슨 황의 GTC 키노트 로드맵 슬라이드에는 있으나 엔비디아 보도자료 본문 어디에도 이 연도가 없다(GTC 2026 블로그는 “베라 루빈 다음의 주요 아키텍처는 파인만”이라고만 쓰고 연도를 붙이지 않는다). 연도 라벨 주의: 블랙웰의 ‘2024’는 발표 연도이지 가용 연도가 아니다 — 엔비디아 자신이 2025년 3월에야 “블랙웰은 풀 프로덕션”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2026년 7월 현재 루빈은 아직 양산 출하 전이다. 무엇보다 엔비디아는 이 모든 진술에 “약속이나 법적 의무로 의도된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해석되어서도 안 된다”는 면책을 붙인다. 운영사들이 잡는 서버 내용연수는 구글 6년, 마이크로소프트 6년, 아마존 6년(2025년 1월부터 일부는 “기술 발전 속도 증가”를 이유로 5년으로 단축), 메타 5.5년이다. 혁신의 시계와 회계의 시계 사이의 이 간극 자체가 지금도 논쟁 중인 쟁점이다. 데이터센터의 노동 경량성에 대해서는 100MW급 하이퍼스케일 캠퍼스의 상주 인력이 대략 100–200명, 고도로 자동화된 곳은 20–30명 수준이라는 점을 참고. Marx, Capital Vol. 1, ch. 15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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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펜스의 노동시장 신호 모형(1973)이 확립한 것은 더 잘 아는 쪽이 낮은 타입에게 더 부담스러운 행동을 통해 사적 정보를 신빙성 있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분리균형에는 신호가 타입별로 비용이 달라야 한다는 조건(단일교차)이 필요하다. 스펜스는 2001년 노벨 경제학상을 애컬로프·스티글리츠와 공동 수상했다. 중요한 구분 — 스펜스식 신호는 (셸링·딕싯의) 공약도 아니고 (자하비의) 위조 불가능한 신호도 아니다. 진입저지를 이 렌즈에 넣으면 안 된다 — 용량 경쟁에 대한 되돌릴 수 없는 공약을 통한 진입저지는 Spence(1977)와 Dixit(1980)으로, 사후 보수를 바꿔서 작동하는 완전정보 메커니즘이며 사적 정보를 전달하지 않는다. 진짜 신호 이론 판본은 Milgrom & Roberts(1982)의 한계가격 설정이다. 한편 자하비의 핸디캡 원리(1975)는 신호가 비용이 크기 때문에 정직하다고 보았고 그라펜의 1990년 모형이 이를 입증했다고 받아들여지며 지배적 패러다임이 되었으나, Penn & Számadó, Biological Reviews 95 (2020), 267–290, doi:10.1111/brv.12563은 1990년대 이후 이론이 균형에서 지불되는 신호 비용은 정직성 유지에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님”을 보였다며 이 패러다임의 폐기를 결론짓는다. Számadó 외, BMC Biology 21:4 (2023)는 균형 신호 비용과 신빙성 조건이 독립임을 형식적으로 보이고 “핸디캡 패러다임은 폐기되어야 한다”고 적는다. 정직성은 이제 비용 자체가 아니라 차등적 트레이드오프로 설명된다. ↩